김정은 “출신 성분 따지지 말고 실력 좋은 해커 무조건 뽑아라”

입력
2023.05.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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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 속 확실한 '돈줄' 해킹 강화 차원 
혈통 중시하는 北 현실 감안하면 이례적 
"10~20대 해커, 월 2000달러 벌어 인기" 
北 전체 예산의 18% 해킹으로 벌어들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해커를 양성할 때 출신 성분을 따지지 말고 실력 좋은 인재는 무조건 뽑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그간 해킹으로 가상자산을 탈취해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충당해 왔다. 정권 유지의 버팀목인 셈이다. 이제 김 위원장이 직접 선발에 관여할 정도로 해커 확보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5일 고위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정보기술(IT)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정권 지도부를 향해 이같이 강조했다고 한다. '혈통'에 따라 거주지, 직업 등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북한에서 이처럼 '실력'에 따른 기용은 극히 이례적이다.

해커에 대한 김 위원장의 관심은 남다르다. 앞서 2013년 “사이버전은 핵·미사일과 함께 우리 군대의 무자비한 타격능력을 담보하는 만능 보검”이라며 치켜세웠고, 이후 북한의 해킹 능력은 급성장했다.

특히 2017년 6차 핵실험을 거치며 북한 해커들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제사회가 촘촘한 제재로 북한을 옥죄면서 외화벌이가 막히자 사이버 공간에서 불법 돈벌이에 나선 탓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사이버 전력을 6,800여 명(2022년 기준) 규모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다.

김 위원장이 정권의 존망을 가를 수도 있는 해커를 뽑는 데 출신 성분을 따지지 말라고 지시한 건 매우 상징적이다. 북한은 주민을 철저히 분류해 관리하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기본 군중(핵심계층) △복잡한 군중(평범한 중간층) △적대계급 잔여분자(지주·부농 후손 등 적대계층) 등 3대 계층으로 나누고, 그 아래 다시 56개 부류로 구분한다. 이는 주민대장에 기재돼 간부 채용 과정에서 활용된다.

해커 선발도 과거에는 출신 성분이 반영됐다. 북한 전역 인재를 추려 평양의 금성제1중학교를 포함한 3, 4개 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김책공대 등 중점대학으로 진학시켜 해커로 키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당연히 출신 성분을 따진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충성도가 떨어져 체제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선택할 인재 범위가 좁아지는 점은 문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사이버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요원의 수가 아닌 질"이라면서 "인재풀이 넓어야 능력 있는 해커를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자루스, 킴수키 등 악명 높은 북한 해킹 조직은 소수의 엘리트 해커들이 이끄는 것으로 알려졌다.


1년간 해킹 수익=ICBM 83발 발사 비용

해커는 북한 청년층에게 인기 있는 직업이다. 북한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보위부 직원 1명이 10~20대 해커 5~10명씩 중국으로 데려가 해킹을 시킨다고 한다"면서 "젊은 해커들은 월 2,000달러(약 266만 원)가량 받는데 이는 해외에 체류하는 주요 대사의 급여보다 두 배는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남한의 수재들이 의대에 몰리듯 북한의 최고급 인재들은 핵·컴퓨터공학을 다루는 전공을 선호한다.

북한이 'A급 해커' 확보에 목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절박해서다. 미국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해커가 빼돌린 암호화폐 규모는 16억5,000만 달러(약 2조1,900억 원)로 추정된다. 이는 북한 연간 예산(91억 달러·2021년 기준)의 18%에 해당한다. 최소 2,000만 달러가 드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83발 쏠 수 있는 돈이다.

정부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훔쳐 큰돈을 벌어 온 북한은 관련 인력을 계속 보강해 갈 것"이라며 "핵심 해커를 제재하는 등의 조치로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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