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준금리가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물가가 둔화하면서 "이제 금리 인상은 막바지"라는 안도가 나오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은행 불안으로 긴장감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은 5~5.25%로 상향했다. 2007년 8월(5.25%) 이후 최고치다. 40년 만의 최악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5%포인트나 올린 결과다.
이번 인상 명분도 역시 물가였다. 물가 상승폭은 지난해 6월 정점을 찍은 후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목표치(2%)를 크게 웃돈다.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물가 하락 속도는 점차 더뎌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주시하는 물가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은 3월 4.2%(전년 대비)로 2월 대비 0.8%포인트 줄었으나, 근원 PCE는 4.6%를 유지했다. 시장이 일찌감치 '금리 5.25%'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이유다.
시장의 진짜 관심사는 "이번이 마지막 인상인가"였다. 연준은 올해부터 인상폭을 0.25%포인트로 줄이며 끝에 다다랐음을 시사해왔다. 고금리의 '풍선 효과'로 미국 중·소형 은행이 연쇄 파산하면서 "더 이상의 긴축은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었다. 심지어 "연내 금리 인하"를 바라보는 참가자들도 꽤 많았다.
연준은 이날 시장의 기대에 일부 부응했다. ①통화 정책 결정문 문구가 "추가적인 긴축이 적절할 것으로 기대"에서 "추가적으로 적절한 긴축 정도를 결정할 때에는"으로 변경됐는데, 시장은 이를 "인상 중단을 시사한 것"(JP모건)으로 해석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수긍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FOMC에선 금리 인상 중단에 대한 결정이 이뤄지진 않았으나, 문구 변경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추가 긴축의 적절성은 회의 때마다 입수되는 데이터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②"현재 금리 수준이 충분히 높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파월 의장은 "연간 물가 상승률을 3%로 가정하면 실질금리는 2%이고 이는 (물가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소형 은행들이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등 신용이 위축되는 현상 역시 금리 수준이 높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바랐던 결과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양분됐다. 채권·외환시장은 연준 결정에 환호했다. 국고채 등 시장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달러 가치가 101에서 100선으로 내려앉으며 원·달러 환율(종가 1,322.8원)은 하루 만에 15.4원 폭락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증권가에서도 "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물론 "은행 시스템은 생각보다 탄탄하다"며 "두 번의 인상이 더 남았다"는 소수의견(씨티은행)도 존재했다.
미국 주식시장은 반대로 하락 마감했다. ①상대적으로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가 높았으나 파월 의장이 이날도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②"이날 기자회견에서 은행 불안에 관한 문답 비중이 높았던 것도 참가자들의 우려를 높였다"(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미디어콘텐츠본부장)는 분석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은행 연쇄 파산으로 인한) 신용 긴축이 얼마나 크고 오래 갈지 알 수 없다"며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경계했다.
설상가상 이날 로스앤젤레스 지역은행 팩웨스트 뱅코프까지 파산 위기에 휩싸였다. 은행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팩웨스트는 시간 외 거래에서 60% 폭락했다. 퍼스트리퍼블릭 파산 이후 5일 연속 약세를 이어가던 터였다. 팩웨스트까지 쓰러지면 실리콘밸리은행(SVB) 이후 미국에서만 4개 은행이 문을 닫는다.
그 여파로 코스피도 하락 출발했으나 환율 하락에 외국인이 유입되면서 2,500선을 가까스로 방어했다. 코스닥은 개인 순매수세로만 0.2% 상승해 845.06으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