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뽑아야 할 장애인이라면, 회사에 꼭 필요한 업무 담당은 어때요?"

입력
2023.05.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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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사회공헌 담당 SK C&C 박지은 매니저
취업률 91%로 장애인 ICT 취업 등용문 된 '씨앗'
속기사 배치하고 장애인 맞춤형 교육 진행


"기업들에 고용부담금을 낼 바엔 역량을 갖춘 장애인을 뽑아 일을 시켜보면 어떨까요라고 설득했죠."
박지은 SK(주) C&C 매니저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판교디지털훈련센터에는 코딩 실습이 한창이었다. 언뜻 보면 취업 준비생을 위한 보통 교육 같지만 한쪽에는 강사 발언을 바삐 따라 적은 속기사가 있었고, 커다란 모니터를 두고 바짝 당겨 앉은 학생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SK㈜ C&C가 2017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운영 중인 청년 장애인 ICT 전문가 육성·취업 지원 프로그램인 '씨앗' 교육 현장이다. 채용연계형 교육인 씨앗은 지난해 6기까지 누적 수료생 199명 중 182명이 취업에 성공하며 국내 대표 장애인 ICT 전문가 취업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7기에는 SK㈜ C&C를 비롯해 구글코리아, SK쉴더스, FSK L&S, KCC정보통신, TVING, 한화테크윈 등 2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업무 잘 수행할까 걱정 많지만 80%는 채용 유지"


씨앗을 처음 기획하고 7년째 운영 중인 사회복지사 박지은 매니저는 "장애인을 채용했을 때 실제 업무 수행이 가능할까 걱정하는 기업이 많았다"며 "씨앗 교육을 마친 장애인의 80%는 지금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경제 활동을 도우려 1991년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실시했다. 상시근로자 50명 이상의 민간 기업은 정원의 3.1%를 장애인으로 채용해야 한다. 의무고용률에 미달하면 벌금 형식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벌금이 인당 최저임금밖에 되지 않아 이를 택하는 기업도 상당수다.

SK에서 20년 동안 사회공헌 업무를 해 온 그 역시 처음부터 장애인 개발자를 직접 뽑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박 매니저는 "어차피 개발자가 모자란 상황에서 우리부터 맞춤 교육을 해서 직접 채용해보기로 했다"며 "사내에서 장애인 개발자들이 충분히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외부에서도 요청이 와 씨앗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IT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많고 컴퓨터 앞에서 코딩을 주로 하는 만큼 장애 때문에 겪는 차별이 덜할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장애인 직원 적응 위해 현업 설득도 적극


박 매니저는 장애인의 진정한 자립을 돕기 위해서 먼저 장애인들이 회사에 꼭 필요한 인력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씨앗 시작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저시력자 모니터 등 장애인 교육에 필요한 보조 공학기기를 지원받아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생들은 과정별로 4~6개월 동안 기업 현장에서 원하는 교육을 받고 모의 면접 코칭부터 직장에서 필요한 사회성 및 스피치 역량을 높여주는 교육, 직장 예절 및 비즈니스 매너 교육 등도 따로 받는다.

기존 직원들을 설득하는 일도 필요했다. 장애인 직원이 업무적으로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박 매니저는 "처음 인력을 요청한 부서에 비장애인 한 명과 장애인을 같이 보냈다"며 "장애인 직원이 적응을 어려워하니 일정 기간 내부 일을 하고 단계적으로 고객사 미팅까지 확대하는 식으로 해보자고 적극 설득하면서 인식을 개선했다"고 말했다.

수년째 씨앗을 통해 장애인을 뽑는 기업도 있다. 최근엔 비슷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문의도 들어온다고 한다. 박 매니저는 "삼성SDS나 포스코 등에서도 찾아와 장애인 대상 ICT 취업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며 "씨앗이 나비효과가 돼서 장애인들이 자립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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