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중증 질환, 장애 등을 겪는 부모ㆍ조부모를 돌봐야 하는 아동이나 청년들, 이른바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첫 실태조사가 발표됐고, 후속 대책도 뒤따를 예정이다. 다만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만 13세 미만 영 케어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책 논의는커녕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생애주기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 체계를 갖춰야 장기 돌봄으로 인한 아동ㆍ청소년의 기본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 차원의 첫 조사다. 지난해 4~5월 전국 만 13~34세 청년 4만3,882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이 중 가족돌봄청년으로 확인된 810명의 삶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봤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주당 평균 돌봄시간(가사노동, 병원동행, 용변보조 등 포함)은 21.6시간이었다. 평균 돌봄기간도 약 4년(46.1개월) 가까이 됐다. 또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가족을 돌보지 않는 청년(8.5%)의 7배를 웃돌았다. 육체적ㆍ정신적 피로감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한계도 뚜렷했다. 만 13세 미만 아동이 조사 대상에서 빠져 어느 연령대보다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초등학생 영 케어러의 실상은 놓쳤다. 김승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옹호본부 대리는 “실태조사에서 제외됐다는 것은 향후 정책적 지원 대상에서도 누락된다는 의미”라며 “조사 범위 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강민정ㆍ서영석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가족돌봄청년 관련 지원 법안은 지원 대상 연령에 하한을 두지 않았다. 영 케어러 관련 법안을 2014년 제정한 영국도 돌봄을 제공하는 18세 미만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수조사 못지않게, ‘발굴→연계→지원’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누가 긴급 지원을 원하는지 발굴할 수 있는 선별 체계 마련이 중요하다. 복지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가족돌봄아동ㆍ청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등 교육기관이 1차 발굴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가령 결석이 잦거나 갑자기 학업을 소홀히 하는 등의 이상 징후를 학교는 실시간 포착할 수 있다. 실제 영국은 교육기관이 영 케어러를 식별한 다음, 지원 기관에 연결시켜주고 있다.
또 생애주기에 맞게 지원책을 다변화해야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가족돌봄아동들은 너도나도 ‘경제적 지원’을 1순위 과제로 꼽았다. 다만 2순위는 연령대별로 달랐다. 초등학생은 주로 ‘심리ㆍ정서 상담 지원’을 요구한 반면, 중학생은 ‘문화ㆍ여가 지원’을 선호했다. 고교ㆍ대학생은 ‘진로 및 취업 지원’을 택했다. 생애주기별로 관심사나 핵심 과업이 다른 만큼, 제공하는 복지서비스의 우선순위에도 변화를 꾀할 필요성이 큰 것이다.
아일랜드 사례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 아일랜드는 영 케어러의 돌봄 역할, 개인 시간, 감정, 경제적 어려움, 학업 상황 등을 꼼꼼하게 평가한다. 이후 평가 및 면담 결과 등을 토대로 담당 직원이 장기 가족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여건에 따라 맞춤형 상담이나 간병 지원 서비스 등을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