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잘 나가도 내 삶은 나아진게 없어"... 미국 작가 1만명 총파업

입력
2023.05.03 15:54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켰을 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의 수익 배분 문제가 논란에 휩싸였다. 시리즈의 전례 없는 성공으로 넷플릭스는 1조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반면, 감독·작가를 비롯한 창작자들은 러닝개런티(흥행 성적에 따라 배분되는 수익금)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대는 대신 지적재산권도 독점한다'는 계약에 따른 것이지만공정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관행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미국 작가들의 총파업이 2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영화 TV 라디오 뉴미디어 영역 작가들이 소속된 미국작가조합(WGA)과 넷플릭스, 월드디즈니 컴퍼니 등 영상 스튜디오(제작사) 간 협상은 전날 최종 결렬됐다.

이에 따라 조합 소속 작가 1만1,500여 명이 작업을 중단하게 돼, 이들이 참여하는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은 제작 중단 및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다. 작가와 스튜디오 간 입장 차이가 워낙 큰 탓에 파업이 꽤나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작가조합 차원의 총파업은 2007년 이후 약 16년 만으로 이번 파업을 두고선 "스트리밍 시대의 첫 파업"이란 평가가 나온다. 넷플릭스같은 OTT들이 세계 방송·영화 산업을 재편한 이후에도 여전히 기존 제작 관행을 이어오던 미디어 업계에, 이번 파업은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작가들 "급여 23% 줄어" vs 제작사들 "OTT도 위기"

WGA와 영화·TV제작자연맹(AMPTP) 간 협상의 최대 쟁점은 작가들에 대한 보상 인상 문제였다. WGA 측은 작가들에게 연간 총 4억2,900만 달러(약 5,740억 원)가 추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AMPTP 측은 8,600만 달러(1,150억 원)를 제시했다. 간극이 5배에 가까울 정도로 컸다.

작가들은 "OTT가 방송·영화의 주류가 된 이후 제작 환경이 크게 변했음에도 처우는 그대로"라며 "보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WGA에 따르면 OTT 시리즈의 시즌당 편수가 과거에 비해 적고 해외 방영에 따른 재상영분도 없는데 업무량은 전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사이, 지난 10년 간 작가들의 급여 중간값은 오히려 4% 줄었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23%나 감소했다.

작가들은 보상 확대와 함께 "인공지능(AI)과 작가들이 공존하지 않게 해 달라"는 내용도 비중 있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작사들이 생성 AI를 활용해 작가들이 쓴 이야기의 후속 편을 짓거나, AI가 쓴 대본을 작가들에게 손보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형 스튜디오들은 변화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지금은 큰 변화를 줄 때가 아니란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순감소했고, 디즈니플러스를 운영하는 디즈니는 최근 약 7,000명을 해고했다. 경영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만큼 작가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인기 방송 줄타격 불가피... "넷플릭스 타격은 적을 수도"

작가들은 이날부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는한, 이들은 행동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작가 총파업으로 당장 미국에선 주요 방송의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평일 밤 방송되는 주요 투나잇쇼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같은 주요 프로그램, 일부 드라마 방영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영화의 경우 올해 개봉 예정작들은 대체로 제작을 이미 마친 상태라 당장 큰 여파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최근의 작가 파업 사례인 2007년 파업은 100일간 이어졌다. 이 파업은 제작사가 밀집한 로스엔젤레스(LA) 지역 경제에 21억 달러의 손실을 안긴 것으로 추산됐다. 이번 파업 역시 얼마나 길어지느냐에 따라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다만 해외 제작 기반이 탄탄한 넷플릭스 등 대형 스튜디오의 경우 파업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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