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하며 대흥행 중인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주인공은 아이폰 하나 쥐고 일본 전역을 여행한다. 스즈메가 결제할 때 사용하는 ‘스이카(Suica)’는 일본 철도회사 JR이 발행하는 IC칩 내장 선불형 교통카드다. 아이폰 앱에 등록해 두면 ‘애플페이’처럼 폰만 갖다 대면 결제할 수 있다. 철도, 버스는 물론 편의점과 카페, 식당, 쇼핑센터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집에 지갑을 놓고 나와도 불편이 없다.
‘현금 중심 사회’ 일본은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2016년 애플페이와 아이폰용 스이카 서비스가 개시되며 점차 변화했다. 그런데 한국엔 애플페이가 지난 3월에야 시작된 데다 교통카드로 쓰지 못하고 가맹점도 많지 않다. 한국의 교통카드 인프라가 국제 표준이 아닌 방식으로 구축됐기 때문이다.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로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도 세계에서 극히 드문 한국만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구글이나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정확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애를 먹는다. 도쿄에 간 한국인은 일본어를 몰라도 구글 지도 하나만으로 대중교통을 자유자재로 환승하며 맛집 순례를 할 수 있지만,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자유 여행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한국 웹사이트에 가입하려고 하면 한국 이동통신사 전화번호로 본인 인증을 요구받는다.
일본의 더딘 디지털화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코로나19 확산 때 의료기관은 환자 정보를 팩스로 보내 보건소 업무가 마비됐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원금을 나눠줄 땐 우편으로 집마다 통지서를 발송해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한국은 이 모든 절차를 순식간에 끝내 ‘디지털 강국’의 면모를 뽐냈다.
하지만 한국의 디지털 인프라와 서비스가 국제 표준을 외면하고 ‘네이버와 카카오를 사용하며 한국 이통사에 가입된 한국인’만 대상으로 하는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외국인이나 해외 거주자, 정보 약자는 이 테두리 밖에 있다. K팝과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급증한 외국인 관광객에게 언제까지 ‘한국에선 한국식 디지털에 적응하라’며 불편을 강요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