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가 많이 아파요. 제발 살려주세요.”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에 근심 가득한 얼굴로 ‘식집사(식물+집사)’ 김태의(25)씨가 애지중지 품고 온 가방을 열였다. 안에서 노랗게 변색된 잎사귀가 힘없이 머리를 내밀었다. ‘환자’는 관엽식물 페페로미아와 스파티필름. 4년째 반려식물을 키우고 있는 태의씨가 서울 양천구 집에서 서초구 내곡동 서울시농업기술센터 반려식물병원까지 2시간이나 걸려 한달음에 달려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양 부족 때문이에요. 식물은 흙의 영양분이 모자라면 흡수한 영양분을 새 잎으로 몰아줍니다. 그래서 오래된 잎은 이렇게 시들어 버리죠.” 반려식물병원을 운영하는 주재천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팀장은 초조해하는 태의씨를 차분하게 다독였다. 주 팀장은 “영양제를 평소보다 2배 많이 주면 금세 좋아질 것”이라고 처방을 내린 뒤, 마른 잎을 떼어내고 흙을 덮은 낙엽 부스러기를 치우는 ‘응급처치’까지 해줬다. 그제야 태의씨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지난달 24일 찾아간 반려식물병원에는 식집사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단위로 1인당 화분 3개까지 예약을 받는다. 10일 개원 이후 2주 만에 120그루를 치료했다. 진찰과 상담 결과에 따라 분갈이와 약제 처방 등 맞춤형 처치를 제공해 만족도가 높다. 상태가 심각할 경우 최장 3개월간 입원 치료도 해준다. 서울 4개 구에 개설된 동네병원 ‘반려식물클리닉’에서 ‘중환자’도 인계받는다. 주 팀장은 “농학ㆍ원예학 전공자 6명이 돌아가며 식물을 돌본다”며 “치료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 진료 공간을 온실이 아닌 진짜 병원처럼 꾸몄다”고 설명했다.
잎에 적갈색 반점이 번지는 갈색무늬병에 걸렸던 무늬몬스테라는 초록빛을 되찾았고, 응애균이 퍼져 죽어가던 알로카시아는 새순을 틔워 이날 병원 퇴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사람도 상처가 아물어야 치유되듯, 식물도 새순이나 새 뿌리가 나와야 병이 나은 것으로 본다. 식물 전문가들은 “집에서 달걀 노른자와 식용유, 물을 섞어 만든 ‘난황유’를 간간이 뿌려 주라”고 식집사들에게 당부했다. 잎에 도포된 식용유가 병균 침입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늬몬스테라 주인 김민규(31)씨는 “이곳에서 배운 지식 덕분에 든든하다”며 가벼운 걸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서울 서남부 끝자락에 자리한 반려식물병원까지 찾아오는 식집사들의 공통적 특징은 식물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의 소중한 일부로 여긴다는 점이다. 특히 2020년부터 확산된 코로나19로 사회적 활동이 제약되면서 자연스럽게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태의씨는 “집에서만 지내며 외롭고 우울할 때 파릇파릇하게 올라오는 새싹을 보며 큰 위안을 얻었다”며 “요즘엔 식물 걱정에 장기간 여행도 못 간다”고 웃었다. 민규씨도 “집 안에 초록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실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100억 원대였던 ‘홈 가드닝’ 관련 매출은 2020년 600억 원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5,0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식집사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이나 전문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반려식물병원이 새로 문을 연 이유다. 주 팀장은 “추후 식물 재배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식물마다 고유한 성격 MBTI를 알면 누구든지 잘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원칙은 단순하다. 물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햇빛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생육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관엽식물은 물을 많이 먹고 직사광선엔 취약하다. 반대로 꽃과 허브는 햇빛을 매우 좋아하지만 물은 극도로 싫어한다. 물과 햇빛이 상극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식물 관리가 한결 쉬워진다.
이런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식집사들은 애정이 지나쳐 물을 과도하게 주는 경우가 많다. 반려식물병원을 찾은 식물 대부분은 과습으로 인해 흙과 뿌리가 썩어서 생긴 문제라는 게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분갈이를 하다가 뿌리를 더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 팀장은 “식물도 목마를 때 물을 마시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흙을 찔러서 두 마디 정도까지 축축하면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며 “화분이 비좁아서 분갈이할 때는 기존 흙을 그대로 옮겨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식물 전문가들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건 ‘공존’이다. 식물은 여럿이 같이 둬야 더 튼튼해진다. 공기 중에 습기를 서로 뿜어내고 흡수하면서 상호보완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을 키우고 싶으면 두세 그루를 함께 들이기를 권한다. 주 팀장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 원리와 같다”며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식물도 서로 기대고 어울려야 훨씬 잘 자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