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삼각무역의 이권과 미국 독립

입력
2023.05.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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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로드아일랜드

영국의 신교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넌 이들이 세운 청교도 나라가 미국이지만, 초기 13개 주 중에서도 로드아일랜드는 언론 종교 집회의 자유에 대한 급진적인 견해 때문에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서 추방당한 이들이 건립한 주다. 미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주이지만, 국가가 어떠한 자유로운 종교활동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뿌리를 둔 수정헌법1조(자유)의 개념과 원칙, 즉 미국 민주주의 뿌리가 이곳에서 비롯됐다는 평을 듣는다.

영국 세관 선박에 불을 지르고 독립을 맨 처음 선포한 주가 로드아일랜드였고, 건국 후 미국 연방헌법을 마지막으로 비준한 주도 로드아일랜드였다. 그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와 상반되는 노예무역의 이해가 깔려 있었다.

로드아일랜드는 1790년 문을 연 신대륙 최초 포터킷(Pawtucket) 수력 면방직공장으로 미국 산업혁명의 서막을 연 곳이지만, 주력산업은 노예 삼각무역이었다. 서인도제도의 당밀을 수입해 럼주를 증류한 뒤, 그 술을 서아프리카 노예상인들에게 주고 노예를 사들여, 카리브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에 당밀 값을 치르는 무역. 프로비던스와 뉴포트항을 거점으로 한 삼각무역으로 로드아일랜드는 종주국 영국은 물론이고 연방에서도 독립해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갖췄다.

그 독주에 제동을 건 게 영국의 밀무역 단속과 당밀에 고율 수입관세를 매긴 설탕법(1764)이었다. 로드아일랜드 주민들은 1772년 프로비던스 근해에 정박한 영국 세관선 가스피(Gaspee)호에 불을 질러 수장시켰다. 식민지 주민의 영국에 대한 첫 군사적 저항으로 기록된 이 사건 4년 뒤인 1776년 5월 4일, 로드아일랜드는 미국 최초로 영국 국왕 조지 3세에 대한 충성을 공식 철회했다.

독립전쟁 후 제정된 연방헌법을 1790년 마지막으로 비준한 까닭도 연방정부에 수입관세를 납부하기 싫어서였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