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님! 여기 올라갈 수 있을까요?”
지난달 27일 서울 구로구 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 인근의 한 식당. 출입구 앞 가파른 경사로를 본 곽은혜(26)씨가 휠체어에 탄 한경아(37)씨에게 물었다. 한씨가 출발 스틱을 당기자 전동 휠체어는 ‘위잉’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그러나 경사로 중간을 넘지 못하고 휘청댔다. 곽씨가 뒤에서 붙잡지 않았으면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경사각은 3.2도 이내지만 측정 결과 기준을 한참 웃돌았다. “이 식당은 목록에서 제외해야겠네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선 두 사람은 장애인이동권콘텐츠제작 협동조합인 ‘무의’ 활동가들이다. 한국일보가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한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앱) 제작을 위해 직접 현장 조사에 나선 이들을 동행 취재했다.
우리 사회의 이동권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동네 맛집, 인근 카페를 가고 싶어도 계단 한 칸, 문턱 한 뼘을 넘지 못하는 휠체어 이용자들이 적잖다. 이에 무의와 SK그룹 사회공헌재단인 ‘SK행복나눔재단’이 2021년부터 ‘휠비(WheelVi)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휠비는 휠체어와 내비게이션을 합친 말이다.
휠비의 가장 큰 장점은 서울 시내 지하철역 인근 식당과 카페의 경사로를 비롯해 승강기·장애인 화장실 유무 등의 정보를 통합 제공한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주요 관광지 경로를 안내하는 앱 ‘휠내비길’을 운영하고 있지만 관광 용도다. 서울 시내에서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앱은 휠비가 최초다. 휠비는 이달 중순 정식 출시될 예정이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휠비에 내장될 자료를 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진입로와 출입문 위치 및 형태, 출입구의 폭(1m 이상), 승강기·장애인 화장실·도움벨 유무 등의 정보는 지도에 없다.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다. 무의는 2년 전부터 활동가 8명이 2인 1조로 지하철역 인근 건물 상태를 눈으로 모두 확인했다.
비장애인은 무심코 놓치기 쉬운 현상을 포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날도 곽은혜 활동가는 한 식당 출입구를 한참 관찰했다. 기자가 보기엔 경사로도 낮고, 출입문 폭도 넉넉해 보였는데 실제론 아니었다. 출입문을 지나자마자 자리 잡은 넓은 탁자가 내부의 좌우 이동을 막았다. 결국 이 식당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서울 시내 50개 지하철역 인근 건물의 1만8,000개가 넘는 방대한 자료가 축적됐다. 곽은혜 활동가는 “신당역(2호선) 인근처럼 건물이 많을 경우 현장 조사에 꼬박 3일이 걸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휠비가 완벽하진 않아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알찬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경아 활동가는 “성수동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휠체어 이용자와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을 찾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며 “언젠가 휠비가 전국적으로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SK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박소담 매니저도 “장애인들을 위한 인프라가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휠비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