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두려움을 이기는 상상력, 우리가 괴물을 마주 봐야 할 이유

입력
2023.05.02 04:30
15면
<20> 벌레와 괴물을 닮은 어린이들을 위하여 - 그림책의 그림보기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엄마, 나 바퀴벌레가 되었어요!

“엄마, 있잖아…내가 자고 일어났는데 바퀴벌레가 되어 있다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야?” 지난달, 자녀로부터 이 질문을 받은 엄마 아빠가 많았을 것이다. 4월 초 대한민국에서 바이럴(유행)이 된 카카오톡 놀이였다.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공부하던 한 학생이 장난 삼아 엄마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10대, 20대 아이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장난기가 발동한 부모들의 기상천외하고 재기발랄한 답변들이 여러 소셜미디어 화면에 채워졌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주고받은 대화를 캡처(화면 저장)해서 서로 공유하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고등학생 딸에게 당했다. ‘바퀴벌레가 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위해 네 방 청소를 하지 않을 것이야!’라는 나의 답변에 아이는 크게 웃으며 “오늘 친구들 다 난리가 났어요. 어떤 엄마는 ‘당장 잡아 죽인다’며 살충제 뿌린다고 했다나? 하하하! 엄마처럼 소중하게 키워 주겠다는 대답도 많았고!” 스마트 기기 세대 아이들의 놀이답다. 성장기 청소년들이 흔히 가지는 자기혐오적 공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한 스푼의 유머와 다정함이 첨가되면서 그렇게 해소되었을 것이다. 불안과 공포는 ‘귀여운 벌레’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자아와 화해했을 것이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부터 이미 경험했던 어떤 ‘그림 보기’ 현상이다. 그림책과 닮았다.

오래전 미국의 미술교육 대학원에 다닐 때 나는 그림책에 대해 잘 몰랐다. 당시 한 학생이 모리스 센닥에 대해 발표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것은 단순한 그림책이 아닙니다. 문학과 시각예술, 그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예술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몰랐다. 그러나 이후 두 아이를 낳고 밤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두 아이 모두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을 정말로 좋아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엄마에게 야단맞던 꼬마 맥스가 “엄마를 잡아먹고 말 테야!” 화를 내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맥스가 괴물들과 축제를 시작하면 아이들도 괴성을 지르며 풀썩댔다. 맥스가 무사히 다시 방으로 올 때쯤 그제야 평화롭고 졸린 표정을 짓는 아이들을 직접 보고야 알았다. 시대와 언어가 달라도 모든 꼬맹이들을 사로잡는 이 보편적 마술,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그림이 있는 책 vs 그림책

그림책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다. 그림책을 아동의 언어습득을 위한 학습적 매체 또는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보조적 삽화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이 있는 책(illustrated book)’과 ‘그림책(picture book)’은 다르다. 글의 의미를 돕기 위해서 그림을 삽입하는 일은 이미 기원전부터 있었다. 이집트 파피루스 두루마리나 중세시대 양피지 성서본이 대표적이다. 그러다가 1658년 최초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그림이 있는 책’, 요하네스 코메니우스의 '감각을 일깨우는 그림책'이 등장했다. 이 책은 라틴어 학습을 위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유럽 최초의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 도서였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그림책은 19세기 말 영국의 랜돌프 콜더컷이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콜더컷은 채색·무채색 그림이 글과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그림책을 선보였다. 뉴베리상과 더불어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콜더컷상이 제정된 이유다. 콜더컷상은 예술성이 인정되는 그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많은 수상자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모리스 센닥은 독보적이다. 2012년 5월 모리스 센닥이 사망하자 뉴욕타임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동화작가"라고 헌사했으며 미국 어린이 TV채널 닉 주니어와 구글에서도 하루 종일 그를 추모했다. 모리스 센닥은 왜 특별했을까?




모리스 센닥, 깊은 밤 괴물을 마주하는 아이의 마음을 그리다

캘리포니아대 영문학자 세스 레러 교수가 설명하는 모리스 센닥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레러 교수는 센닥의 작품에서 카프카의 '변신'과 샤갈의 그림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센닥의 3대 명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 '깊은 밤 부엌에서'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린아이가 자기 방, 자기 침대에서 겪는 어떤 공포와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레러 교수는 유대계였던 카프카와 샤갈도 방 안 침대에서 겪는 어떤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적 해결이라고 보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자신이 거대한 벌레가 되어 있다던가,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 것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곳에서 시작되는 불안과 공포'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센닥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죽음'이다. 그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는 아이’의 마음으로 죽음을 은유했다.



모리스 센닥은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미국 대공황을 겪고 홀로코스트 소식을 들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그의 어머니는 늘 웃음기 없는 엄한 얼굴이었다. 모리스는 유달리 악몽을 많이 꾸는 예민한 아이였고, 그의 눈에 세상의 어른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최초의 공포는 네 살 때 찾아왔다. 라디오에서 종일 보도되던 ‘린드버그 유괴 사건’이었다. 장거리 비행으로 유명해진 찰스 린드버그의 20개월 아들이 자기 방 침대에서 괴한에게 납치되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센닥은 침대에서 자던 아기가 납치된 사건을 보면서 어린아이였던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야단치는 엄마를 잡아먹겠다고 하는 아이 모습이 교육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성기가 보이는 누드의 아기가 정액처럼 보이는 우유 속으로 들어간다는 그림이 불쾌하다는 이유로, 센닥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그림책들은 논란이 되었다. 한때 그의 대표작들은 미국 여러 도서관에서 금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뉴욕 브루클린도서관이 발표한 “125년 동안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은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였다.




윌리엄 블레이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상상력을 그리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과정에 누구나 원초적인 공포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에게 “이 괴물 같은 녀석!”이라며 소리 지르는 무서운 어른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보면 안 된다며 이것저것을 숨기고, 가리고, 속이는 어른이 되기도 한다. 모리스 센닥은 눈 가리고 아웅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믿었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디킨슨, 모차르트,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술을 신처럼 믿는다고 했다. 특히 영국 18세기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센닥에게 매우 특별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문학사와 미술사, 그리고 출판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센닥과 마찬가지로 블레이크도 네 살 때 최초의 공포를 경험했다. 침대 옆 창문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평생 자기만의 신비한 세계를 쓰고 그렸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블레이크 작품 분석은 쉽지 않다. 살아생전에 미친 사람으로 불렸던 그는 이제 칼 융,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의 기묘한 작품은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센닥과 마찬가지로 블레이크도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형 출판인이었다. 그는 독특한 판화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시와 그림을 책으로 만들었다. 순수와 경험을 주제로 하는 그의 시화집의 면면을 보면 현대적 그림책에 가깝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의인화하여 자기만의 신화적 세계를 그림책으로 남겼다고 볼 수 있다. 블레이크에 대한 많은 복잡한 분석들이 있지만 결국 키워드는 상상력이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본능처럼 경험했다. 다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진 후 마법을 잃은 우리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감각만을 믿는 어른들이 되었을 뿐이다.




괴물을 용감하게 마주하고 훌륭하게 화해하기

많은 어린이들과 미술 수업을 하면서 흥미롭게 확인한 것이 있다. 보이는 대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고, 반면 머릿속 상상을 어떻게든 그리려는 아이들이 있다. 상상화를 고집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예민하고 까다롭다. 복종보다는 저항을, 질서보다는 파괴를, 나열보다는 혼란을 선호하는 아이들이다. 밝게 웃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꽤 큰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내면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성장했다. 어느 성향의 아이가 미술 영재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단순한 기질적 차이일 뿐,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좀 더 표출적인 해소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모리스 센닥도, 윌리엄 블레이크도 어려서 겪은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괴물을 용감하게 마주했고 훌륭하게 화해했다. 두 사람 모두 평생을 함께한 파트너가 있었지만 자녀는 없었다. 오히려 작은 괴물 같은 아이들과 싸울 일 없이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앞둔 말년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한 할아버지였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았던 어른들이다.

곧 어린이날이다. 1923년에 제정되었으니 올해가 100주년이다. 어린이날이 없는 나라의 어린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어린이와 관련한 여러 통계 수치가 이전보다 좋아졌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어린이날이 필요하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있어도 아이들이 다친다. 놀이터보다는 학원에 아이들이 더 많다. 자야 할 시간에 폰 화면만 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아빠의 온기를 느끼며 잠드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태어나는 아이들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마법 같은 상상의 힘을 망각한 어른들만 가득한 세상이 될까 두렵다. 그래서 더욱 그림책이 그립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엄마! 나 벌레처럼 될까 봐 무섭고 두렵지만, 그래도 엄마가 나 사랑한다니까 기뻐!”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살균처리되고 표백된 세상은 오히려 위험하다. 벌레가 될까 봐 두렵고, 괴물이 나올까 봐 무서운 현실 그대로를 그림으로 읽을 수 있는 세상이 어쩌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미술교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