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임의도살 금지, 남은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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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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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대법원이 전기 쇠꼬챙이로 개를 도살한 농장주인에게 최종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동물보호단체와 동물법 전문가들은 환영했다. 1심과 2심에서는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고등법원이 유죄판결을 했지만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는 등 4년에 걸친 다툼이 이어진 결과였다. 이때 쟁점은 개 전기도살이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해당하느냐는 것이었다.

개 농장주들은 대부분 전기봉을 이용해 개를 도살하고 있어 대법원의 판결은 곧 식용을 위한 개 도살이 불법임을 뜻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개 도살은 계속됐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개를 죽였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현장을 적발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와 수사기관은 소극적인 행정과 수사에 머물렀다.

이달 27일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잔인한 방법이 아니어도 개를 도살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에는 '잔인한 방법' 또는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등 법에서 열거하는 행위만 처벌할 수 있었다.

반면 개정된 동물보호법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때 정당한 사유를 시행규칙에서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허가, 면허 등을 받은 경우 △다른 법률에 따라 동물의 처리에 관한 명령, 처분 등을 이행하기 위한 경우로 한정했다.

즉 위의 세 가지 사유 외의 모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학대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는 경우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허용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게 법조계와 동물단체의 의견이다.

이번에 개정된 시행규칙은 앞으로 개 도살 시 잔인한 방법인지를 따지지 않아도 되고, 또 정부가 개식용 종식에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 개입을 한다면 개 도살을 처벌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시행규칙 개정만으로 당장의 개식용 금지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법조계에서는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이 법률의 목적 및 위임범위를 벗어나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처벌 대상을 국회가 제정한 동물보호법이 아닌 농식품부가 정한 시행규칙에 위임했는데, 시행규칙이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처벌 대상을 확장한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11년 만에 전면 개정된 동물보호법과 시행령∙시행규칙에 '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고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동물단체와 법조계는 환영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 만족해선 안 된다. 먼저 다툼 소지가 있는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 개정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 나아가 동물들이 처한 나쁜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수사기관, 사법부가 각자 제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