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내 장래 희망은 '멋있는 할머니'다. 어떤 모습이 멋진 할머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찾는 것이 결국 내 목표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찾은 멋진 할머니의 모습은 이렇다. 어디든 씩씩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한 할머니, 청바지에 운동화가 잘 어울리는 군살 없는 할머니, 다정함이 묻어나는 멋지고 자연스러운 주름을 가진 할머니, 스마트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할머니, 말을 하기보다 듣는 할머니, 하지만 해야 할 말은 당당하게 하는 할머니, 좋아하는 게 많은 할머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할머니.
현재까지 내가 그린 멋진 할머니의 모습은 이렇다. 하지만 아쉽게도 막상 이런 모습을 한, 비슷한 할머니를 본 적은 없었다. TV나 유튜브를 통해 참 멋진 삶을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발견하곤 했지만 왠지 내겐 그 삶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 운명처럼 내 장래 희망을 만났다. 바로 패티 스미스다.
서점에 책을 입고하기 위해 둘러보던 중 패티 스미스의 신간을 발견했다. 전작 '달에서의 하룻밤'이 무척 좋았기에 이번 신간도 고민 없이 사서 읽었다.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이 책이 너무 좋았다. 첫 장의 한국 독자들에게 그녀가 남긴 인사글은 다정하고 따뜻했으며 이어진 사진과 글은 담백하고 진솔했다. 이런 책을 낼 수 있는 할머니라니!!
이 책은 패티 스미스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엮은 사진 에세이다. 그는 이 책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셜미디어의 왜곡된 민주주의가 잔인하고 반동적인 말, 잘못된 정보, 국수주의를 불러들일 수도 있으나 그래도 우리에게 맞게 쓸 수 있다.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 손이 메시지를 쓰고,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린다. 여기 사물의 공통적 심장을 겨누는 나의 화살이 있다. 저마다 몇 마디 말, 단편적인 계시의 말이 붙어 있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365가지의 방법".
76세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SNS에 게시물을 올리고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녀를 팔로잉하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100만 명의 사람들에게 패티 스미스는 매일 다정하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다정한 매일매일의 인사가 이 책에 고스란히 묶여 있다. 어떤 날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으로, 또 어떤 날은 자신이 사랑했던 예술가의 생일을 알리면서, 또 어떤 날은 함께 사는 고양이의 소식을 전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그 인사가 희한하게 내게 큰 위로가 되어줬다.
여전히 활발하게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그녀의 일상은 그 어떤 것보다 내게 큰 자극이 되어줬다. 사진과 글은 관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세히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얼핏 보고도 다 안다는 듯한 생각과 태도는 사람을 더욱 늙게 만든다. 그녀에 비하면 아직 한참 어린 나조차도 벌써 그런 행동을 한 후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패티 스미스는 여전히 찍고, 쓴다. 그것은 그녀가 여전히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관찰하며 살고 있다는 뜻 아닐까. 성실하게 기록된 그녀의 담백한 사진과 글은 나를 반성하게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사진을 찍고 기록해 나가야 할지 내게 방향을 제시해 줬다.
'P.S. 데이즈'를 읽으며, 그녀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선물 받으며 나도 내 하루를 기록했다. 내가 지금의 그녀 나이가 될 때까지 꾸준히 기록해 가고 싶다. 그녀처럼 여전히 좋아하는 시가, 소설이,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녀처럼 여전히 정원에 떨어진 은행잎을 주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나처럼 뭔가 막 기록하고 싶어질 수도. 그로 인해 아주 작은 것에도 시선을 돌리고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