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사진 앞에 수백 송이의 하얀 국화가 놓여 있다. 정장을 빼입은 고위 공무원이 국화 한 다발을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인다. 취재진과 시민들은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 유명 인사의 장례식이 아니다. 숨진 판다를 떠나보내는 자리다.
28일 태국 언론 '네이선'에 따르면 전날 태국 치앙마이 동물원에서는 지난 19일 세상을 떠난 암컷 자이언트 판다 ‘린후이’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우즈이우 치앙마이 주재 중국 총영사, 위라퐁 리트로드 치앙마이 주지사 등 중국과 태국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 20여 명은 한 줄로 앉아 린후이의 공덕을 기리는 의식을 주재했다. 일부 시민은 승려 앞에 무릎을 꿇고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죽은 동물의 넋을 위로하는 것치고는 다소 과하다고 볼 법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린후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중국과 태국 간 ‘소프트 외교의 상징’에 해당하는 판다이기 때문이다.
린후이는 2003년 중국이 친선 표시로 태국에 대여했다. 중국 정부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자국 국보인 판다를 외교 관계 증진을 희망하는 외국에 대여해 주는 이른바 ‘판다 외교’를 펼쳐 왔다. 현재 약 20개국에 판다를 빌려 준 상태로, 린후이도 이 중 하나였다.
당초 린후이는 오는 10월 20년간의 태국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21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 자이언트 판다 수명이 야생에서는 15~20년, 인간이 돌볼 경우 30년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른 죽음이다. 현재 중국 판다 전문가들이 린후이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태국을 찾아 부검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일각에선 “태국이 판다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만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태국의 손을 놓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우즈이우 총영사는 “린후이의 죽음에 대한 결론을 내린 뒤, 태국에 새 판다를 보내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태국에 대한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미국과 비교해 뚜렷이 대비된다. 전날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동물원에 20년간 대여된 암컷 자이언트 판다가 베이징으로 돌아갔는데, 이는 미중 관계의 급격한 악화를 상징하는 조치로 비쳤다. 중국은 여전히 판다를 고리로 태국과 우호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제스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