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학교 운동장을 지나다가 한쪽에 있는 코트에서 농구하는 학생들을 봤다. 인적이 거의 없는 드넓은 운동장 구석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슛을 던지는 젊음이 눈부시구나 생각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농구 골대에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할 둥근 림(Rim)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햇빛에 눈이 부셔서 잘 안 보이는 걸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여섯 개나 되는 모든 골대에 림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되면서 모임이나 단체 스포츠 활동을 자제하라는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농구를 하고 싶어 계속 모여드는 학생들 때문에 학교 측에서 아예 골대의 림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림이 사라진 골대를 향해 학생들은 거듭거듭 뛰어올라 슛을 날리고 있었다. 마치 농구란 원래 그런 운동이었던 것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을 많이 그렸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눈앞에서 현실로 마주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존재해야 할 것들이, 존재해야 할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존재하는 모든 이에게 아무렇지 않은 세상. 이것을 우리는 '새로운 정상 상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뉴 노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언제까지고 이어질 듯했던 지긋지긋한 코로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농구대의 골대도 모두 돌아왔고 5월을 맞이하는 청년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모든 것이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온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모두 잊어도 되는 것일까?
요즘 학교 건물 뒤켠의 창고에 가보면 식당과 강의실 등에 빼곡히 설치되어 있던 아크릴 칸막이들이 산처럼 쌓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른 용도를 찾을 수 없는 물건들이니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그렇게 쉽게 버려선 안되는 것들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전 세계가 보였던 우왕좌왕하던 모습, 그로 인한 혼란과 갈등, 그 과정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의연하고 치열하게 뭉쳐서 그 고난을 돌파해냈던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교훈과 자신감으로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열심히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은 그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고통과 희생들이다. 3년을 오롯이 친구와 선생님들과 떨어져 온라인 수업으로 고립되어야 했던 이른바 '코로나 세대' 아이들, 코로나와 싸우는 최전선에서 과로와 위험에 자신을 내던져야 했던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의 희생, 생계의 한계 지점까지 내몰려 지금도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자영업자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정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결국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수많은 분들의 죽음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 시대의 아픔들이다.
해외 여행객의 급증으로 공항이 붐빈다고 한다. 사람들의 외출이 늘어나면서 옷과 신발 가격이 오르고 마스크를 벗게 되면서 화장품 업계도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창밖으로 왁자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은 지난 3년간의 괴로움을 모두 씻어낸 듯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애써 보살피고 지키지 않으면 금세 깨어지고 마는 연약한 것인지 알게 된 지난 3년간의 깨달음만큼은 오래오래 잊히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