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회장이 출산한 직원의 집을 방문해 화제다. 직원은 네쌍둥이를 지난해 9월 자연분만했다. 회사는 출산 선물로 9인승 승합차, 출산장려금, 육아용품 등을 지급했고, 이번에 회장까지 와 쌍둥이들을 살펴본 것이다. 회장은 무릎을 꿇은 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씩씩하게 이겨내고 건강해져 장하다, 최고다 최고"라며 덕담을 건넸다. 이런 사실은 해당 직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기사화돼 알려졌다.
주인공은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다. 계획된 보여주기식 일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 소식을 접한 상당수 독자들은 최 회장을 응원했다. 바쁜 일상에서 직원 출산까지 세심하게 챙겼다고 감사 인사를 대신한 독자도 있었다.
포스코그룹은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지원에 적극적이다. 일찌감치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저출산을 꼽으며 출산장려금뿐 아니라 경력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운영했다.
기업에서 저출산 문제를 중시하는 사례는 또 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도입했고, 삼성전자는 유급 난임휴가·유사산휴가 등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법정기준 1년인 육아휴직을 최대 2년으로 늘렸다. 일과 삶의 조화를 중시하는 분위기에 맞춰 제도 변화를 꾀한 결과다.
일부 기업에서 챙길 정도로 국내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가 1명에도 못 미칠 지경이다. "과감한 대책을 마련해 필요한 재정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이유다.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구체화하기로 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개인 삶의 질을 높일 준비가 돼 있지 못해서다. 논란이 된 근로시간제도 개편만 봐도 그렇다. 고용노동부는 현장 의견을 수렴해 추가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수정이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질적 인력난을 겪는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허용하도록 설계한 탓이다. 직원 개인의 삶은 철저히 무시돼 있다 보니 아이를 낳아 키울 꿈은 꾸지도 못한다.
MZ세대를 구속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3년간 근무한 한모(26)씨는 올해 필라테스 강사로 이직했다. 한씨는 장시간 노동에 묶여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 취미였던 필라테스를 본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는 "직업을 바꾸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기업들이 주 4일제를 속속들이 시범 도입하는 것도 한씨처럼 시간 주권을 중시하는 직원들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기존 직원이 일을 더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잘못된 처방이다.
노동시간의 절대량을 줄이는 게 이미 복지가 된 세상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이어서 선진국에서도 검토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도 더 늦기 전에 대대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근무시간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압도적 꼴찌인 출산율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