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의대 가고 싶어하는 나라, 의사 면허가 모든 전문직을 누르고 천하통일을 달성한 이 나라에선, 초등학생이 일찌감치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했다.
△욕망을 숨기지 않는 부모들과 일부 학원 종사자들의 장삿속이 결합한 '사교육 공화국의 망국적 현상'일까? △아니면 시대상을 반영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일 뿐일까? 도대체 왜 초등학생 시절부터 의대를 준비하기 위해 유난을 떨어야 하는 것인지, 학원을 운영하는 이들이나 이 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봤다.
2년 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준비 학원을 개설한 A씨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치열한 의대 경쟁을 위해선 일찍 준비해야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체 초등생이 의대 준비를 위해 뭘 하냐는 질문에, A씨는 "고등학교 수시 대비 활동을 초등학생 때부터 경험하게 한다"고 답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역(고3) 학생들은 정시(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로는 N수생에 밀려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역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 A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실험이나 소논문 작성을 스스로 경험하게 해 고등학교 학생부 비교과 항목을 집중대비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돈을 받고 비교과에 필요한 스펙을 만들어주는 업체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돈으로 스펙을 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A씨는 "입학사정관이나 교수들도 질문 몇 개만 해보면 스스로 한 건지, 아니면 남이 해 준건지 바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부정 사건 이후 상위권 학생·학부모들이 공정성에 민감해졌다고 한다. A씨는 "요즘은 고등학생 돼서 처음으로 과학전람회 등 대회에 나가면 주변에서 '쟤가 갑자기 왜?'하며 매의 눈으로 본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쟤는 원래 실험 좋아하는 애'라고 소문을 내야 견제에서 자유롭다"고 했다.
A씨 설명에 따르면 주요 고객은 전문직 중산층들. 과학고나 영재고는 과학적 재능을 타고 나야 가능성이 있지만, 의대 공부는 상대적으로 재능이 관여하는 비중이 적다고 한다. A씨는 "부모가 사회적 지위·재력이 있는데 자녀는 IT 쪽으로 비상하지도 않고, 연예인이나 유튜버 할 정도로 끼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의사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다들 자식 고생시키긴 싫으니 안정적으로 돈 많이 버는 직장을 갖게 해주고 싶어 하는데,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답은 의사 하나"라고 했다. 기자에겐 "(안정적으로 돈 버는) 다른 직업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녀의 직업을 의사로 정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뜨겁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한 부모는 "SKY(서울대 고대 연대)반 위에 의대반이 있다"며 "유치원때부터 성적 순으로 반이 나뉘는데, 최상위반에 가야 초등학교 입학 후 의대준비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보통 (다른 강의는) 주 1회 수강료가 20만 원이고 최상위반은 40만~50만 원이지만, 엄마들은 서로 보내려고 난리"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초등 의대반이 학원가에 스쳐가는 또다른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시선도 있다. 학원들이 초등 최상위권 반을 의대반으로 이름만 바꿨다는 것. 임성호 종로학원 원장은 "20년 전엔 초등학생 학원 곳곳에 '카이스트'라는 글귀가 가득했다"며 "성적 피라미드 구조는 그 때와 똑같고, 꼭대기만 서울대·카이스트에서 의대로 바뀐 것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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