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이 된 소년은 날지 못했다. 2015년 8월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견 선수 선발전. 프리 스케이팅에서 첫 점프로 시도한 트리플 악셀. 흑조는 이내 미끄러지고 만다.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낌.
그런데도 웬일인지 잇따라 같은 점프를 시도한다. 프리에선 같은 점프를 단독으로 두 번 이상 뛰면 안 된다. 역시 넘어진다. 이것이 소년의 오기이자 자존심.
경기를 마친 그의 몸에 달린 검은 깃털들이 축 늘어졌다. 관중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발을 헛디딜 정도로 위태롭다.
블랙 스완은 날개가 꺾였을까. 아니, 창공을 펄펄 나는 중이다. 8년 뒤 그의 트리플 악셀은 무려 높이가 0.7m 이상으로 세계 최정상 수준이 됐고, 거기다 쿼드러플 점프 2종까지 더했다. 올해 3월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차준환(22) 선수다.
발목 부상이 채 회복되지 않았어도 기를 쓰고 점프를 하고, 넘어졌다고 좌절하는 게 아닌 또다시 도약하는 독기와 성실함, 그것이 차준환을 만들었다.
2022~2023 시즌만 해도 그렇다. 시즌 초반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 종합 226.32점(네펠라 메모리얼)으로 시작한 점수는 마무리할 때 296.03점(세계선수권)으로 뛰어올랐다. 한 시즌 내에서 무려 69.71점을 끌어올린 결과다.
그는 ‘성장의 아이콘’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자 싱글 선수 중 최연소로 출전해 15위를 기록한 데 이어 두 번째 올림픽인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선 5위로 비약했다. 지금보다 다음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처음부터 완성된 선수가 아니라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낸 성과이기에 그의 날갯짓은 아름답다.
남이 알아챌 만큼 성장하기까지 남모를 성장통이 있었을 건 자명한 일. 차준환 선수를 4월 18일 만났다. 이번 시즌 그의 경기 서막을 알리는 노랫말처럼 시작될 ‘차준환의 시즌’, Can you feel it?
이번 시즌 그의 쇼트(‘마이클 잭슨 메들리’)와 프리(‘007 노 타임 투 다이 OST’)는 기술성과 예술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프로그램이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가능한 고난도의 연결동작을 곳곳에 배치했고, 안무 또한 그의 장점을 잘 살렸다. 특히 쇼트 프로그램은 후반 스텝 시퀀스까지 숨 쉴 곳 하나 없이 내달리는 구성이다. 4회전 점프인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토루프도 한층 안정돼 세계선수권에선 3점대 중반~4점대의 가산점을 받았다.
-최고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어요. 이번 시즌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초반에는 좀 붕 떠있는 기분이었어요.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중요하고도 큰 경기를 마치고 난 뒤라서 그랬나 봐요. 복잡한 심경이었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요.
“제 목표를 향한 길이 아직 남아있잖아요. 그걸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어요. ‘일단 운동에만 집중하자’ 이렇게 마음먹고 훈련을 더 잡아서 했죠. 몸이 준비가 돼있으면 마음이 좀 복잡해도 (경기가) 닥치면 되거든요. 지난해 4, 5월 안무를 짜온 뒤 지상훈련에 매진했고, 이어 진천선수촌에서 합숙훈련도 하면서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까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경험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제게 큰 도움이 됐죠.”
쇼트와 프리의 첫 점프인 쿼드러플 살코와 후반에 뛰는 트리플 악셀이 문제였다. 쿼드러플 점프를 모두 성공하면 트리플 악셀에서 실수가 나오거나 회전이 풀려 싱글로 랜딩하곤 했다.
세계선수권 전 마지막 국제대회인 사대륙선수권에선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까지 생겼다. 쇼트 경기를 시작하기 전 갑자기 심판이 호각을 불어 빙판에 떨어진 이물질을 차 선수에게 줍도록 하더니 음악마저 제때 시작하지 않고 지연됐다. 이 때문에 선수가 경기 진행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한 번 일어나기도 어려운 일이 연달아 생긴 거다. 그것도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경기 직전에. 자칫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사대륙선수권 때는 진행상의 문제까지 겹쳐 억울할 법도 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좀, 힘들긴 했어요. 사대륙선수권은 시즌의 중요한 대회 중 하나이고, 그래서 시즌 초에는 사대륙을 목표로 삼았거든요. 실제 대회에 가서 연습 때도 잘 됐고요. 그래서 아쉬움이 더 컸어요.”
-후유증이 남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동계전국체전에 나가기로 결정했죠. 사대륙선수권 일주일 뒤에 열렸어요. 원래는 세계선수권을 대비해서 컨디션도 관리하고 부상도 예방하는 차원에서 출전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도저히 그 상태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재정비하고 안 좋은 기억도 지워서 깨끗한 상태로 바꿔놓고 싶었어요.”
전략은 먹혔다. 그는 동계체전에서 프리 경기의 두 번째 4회전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를 2회전으로 처리한 걸 제외하면 쇼트와 프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1위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때 결정은 선수 본인이 하나요.
“네, 제가 결정했어요. 사실 사대륙선수권 이후 컨디션도 너무 안 좋았거든요. 그래도 동계체전을 뛰고 세계선수권에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동계체전에서 경기를 잘 풀어나갔죠.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마침 세계선수권까지 한 달 정도가 남아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회복하기에도 충분했어요.”
-세계선수권에서 쇼트 경기를 마치고 ‘아, 드디어 클린했다’ 하는 표정이었어요. 이어 프리까지 이번 시즌 국제대회 첫 클린을 세계선수권에서 해내 더 뜻깊었을 것 같아요.
“시즌 내내 쇼트에서 자잘하게 실수가 나와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1월 종합선수권 때부터 실수를 보완하는 데 더 집중해서 훈련했어요. ‘준비한 걸 깔끔하게 했구나. 연습대로 했구나’라는 안도감에서 나온 표정 같아요. 무엇보다 연습한 대로 수행해서 좋았어요.”
-프리 경기까지 클린할 걸 예감한 순간이 있었나요.
“그렇다기보다 좀 다른 건 있었어요. 경기 전 6분 웜업 때 대개는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연습에 집중해요. 이번엔 꽉 들어찬 관중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와’ 하는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세계선수권이 열린)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가 굉장히 큰 경기장이거든요.”
-그러면 더 긴장되지 않나요.
“굉장히 즐거웠어요. 프리 경기 하는 날 남자 싱글 선수들이 다 좋은 경기를 보여줬거든요. 원래 다른 선수들 점수를 신경 쓰지 않긴 하지만 그날은 긴장되기보다는 ‘나도 잘 타면 좋은 결과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고의 시즌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떤가요.
“저도 가장 좋았던 시즌이에요. 결과 때문이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을 마치고 싱숭생숭한 상태였던 나 자신을 잘 컨트롤해서 마쳤기 때문이죠. 시즌 초ㆍ중반에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내가 마음먹은 대로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쇼트에서 몇 위 하고, 프리에서 몇 위 하고 이런 게 아니라 경기 때 내가 연습한 대로 탔다는 게 가장 기쁜 일이에요. 게다가 은메달로 다음 세계선수권 출전 티켓을 더 많이(3장) 확보한 것도 만족스럽고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세운 목표 중 하나거든요.”
선수에겐 늘 운만 따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시즌 닥친 뜻밖의 난관까지 의지로 이겨내면서 또 한 번 성장했다.
점프는 그의 성장을 엿보게 하는 일단이다. 4회전인 쿼드러플과 3회전 반의 트리플 악셀은 ‘믿고 보는’ 수준이 됐다. 세계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로 얻은 수행점수(GOE)는 무려 4.16점. 심판(저징 패널) 9명 중 3명이 5점, 나머지는 4점을 줬다. GOE는 5점까지 줄 수 있다.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4회전 점프가 더욱 좋아졌어요.
“점프의 퀄리티를 높이려고 더욱 공격적으로 집중 연습했어요. 진천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할 때였죠. 연습 개수도 늘렸고 다양한 상황에서 뛰기도 했죠. 몸이 지친 상태에서 더 점프 연습을 한다거나 4회전 점프를 연속으로 붙여서 뛰는 방식으로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하도 연습하다 보니까 나중엔 발등이 아프더라고요.”
-고난도 점프도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면 자신감이 붙나요.
“아, 자신감....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고 보니 자신감이 붙었네요. 안정감도 느껴지고요. 그 자신감이라는 게 확신이라기보다는 점프가 몸에 익는 느낌이에요.”
-점프를 하나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할까요.
“아, 그건 점프마다 달라서 특정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저는 4회전 점프가 현재 수준이 되기까지 7년이 걸린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피겨 선수들이 대개 점프를 뛸 때 이미 성패가 느껴진다면서요. 실패할 것 같아도 회전을 하는 건 아예 안 뛰어서 기초점을 못 받는 것보단 감점을 받는 게 나아서 그런 걸 텐데, 넘어질 걸 각오하고 점프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사실 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 찰나에 생각할 겨를이 없거든요. 이미 실수는 나온 거고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건 다음 요소죠. 경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선수들은 기술 하나를 성공하기까지 엄청나게 많이 넘어져요. 수천, 수만 번 이상이죠. 경기 때 넘어지더라도 그건 수만 번의 넘어짐 중 하나일 뿐이에요. 타이밍이나 뭐 다른 요소가 안 맞아서 그렇게 된 게 아쉽긴 하지만요. 시도했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넘어지면 아프겠다 이런 걸 걱정할 수가 없죠. 그저 그 순간 최선을 다해야 무수한 넘어짐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거예요. 주저한다면 그 넘어짐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죠.”
-하도 넘어져서 골반에 물이 차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세포가 죽어서 물혹이 생기면 물을 빼고 압박 붕대로 감고 또 뛰었다고요.
“맞아요. 평창 올림픽 선발전 때 그랬어요. 무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꿈의 경기에 다가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경기 때 넘어지면 더 당황스럽고 아플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하나요.
“호흡을 하려고 해요. 넘어지면 경기의 흐름이 끊길 수 있는데, 호흡이라도 원래대로 가져가려고 노력하죠. 경기 때는 정신이 없어서 아픈 건 잘 모르겠어요. (미소)”
-넘어지고 나면 달라지는 게 있나요.
“넘어질 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요. 나는 길 위에 있고, 어차피 이건 과정이니까요.”
피겨 선수에게 스케이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좋은 부츠는 하늘이 내려주나 싶을 정도로 발에 잘 맞는 걸 만나기가 어렵다. 그도 부츠 때문에 오랜 세월 고생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때는 오른쪽 부츠의 발목이 무너져 급히 플라스틱을 덧대 수선했는데도 고리마저 떨어져 나가 결국 기권해야 했다.
-스케이트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 이제는 아무 생각도 안 드는 수준이 됐다고나 할까요. 하하. 스케이트란, 참 알 수 없는 존재죠.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심지어 최대한 스케이트에 나를 맞추려고 하는데, 그래도 문제가 생기니까요. 마음을 비우려고 해도 막상 경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긴 하죠.”
-발에 맞는 스케이트를 찾기가 그렇게 어렵다고요.
“맞아요. 마음 같아선 여벌로 여러 개 준비하고 싶지만 한 개를 준비하기조차 힘들죠. 같은 브랜드, 같은 치수여도 부츠마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어떤 건 부드럽기도, 어떤 건 억세기도 하고요. 올 시즌은 유난히 시합 직전에 스케이트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지나고 보니 그런 경험을 하면서 그 안에서 더 성장한 것 같아요. 늘 모든 조건이 좋을 수는 없잖아요. 뭔가 (내게) 잘 맞지 않는 상황에서도 해내면 ‘이게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지금까지 신은 스케이트가 몇 개쯤 될까요.
“오, 글쎄요. 꼽기가 어려워요. 대중없어서요. 한두 달 만에 12개를 신을 때도 있거든요. 2019 세계선수권을 앞두고는 8번이나 교체했어요. 그런가 하면 베이징 올림픽 시즌 때 왼발은 부츠 1개로 1년, 오른발은 2년을 신었어요.”
그의 특기는 ‘준나바우어’다. ‘차준환만의 이나바우어’라는 뜻에서 ‘준나바우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앞쪽 다리는 굽히고 뒤쪽 다리는 편 채 스케이트의 두 날이 평행을 이루면서 빙판을 가로지르는 기술이다. 그는 허리를 뒤로 깊숙이 젖혀서 한다. 코어의 힘이 탄탄하게 뒷받침되면서도 유연해야 가능하다. 2초 남짓을 하기도 어려운 이 이나바우어를 그는 눈에 띄게 길게, 게다가 시선까지 방향에 맞춰 옮겨 가면서 한다. 이번 시즌 프리 경기에선 무려 6, 7초 동안 이나바우어를 했다. 어김없이 관중의 박수가 터지는 대목이다.
-시그니처 중 하나가 ‘준나바우어’인데요. 2019~2020 시즌 프리 프로그램인 ‘The Fire within’에서 처음 선보였죠.
“그전에도 이나바우어를 하긴 했는데 독창적으로 시도한 건 그때가 처음이에요. (아이스댄싱 선수 출신 안무가) 셰린 본과 작업을 하다가 생각한 아이디어예요. 중간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음악이 인상적으로 늘어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잘 어울리게 이나바우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동선상) 마침 심판석을 지나면서 하게 되는데 고개를 돌려서 심판 쪽을 보면 좀 더 마음에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라고 들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길게, 시선을 옮겨가면서 이나바우어를 할 수가 있던가요.
“중심 잡기가 힘든 동작이긴 해요. (쑥스럽게 웃으며) 그런데 큰 어려움 없이 됐어요.”
-그게 처음부터 됐다고요.
“아, 물론 이나바우어를 그 수준으로 하기까지 엄청나게 노력을 했죠. 몇 년간 훈련한 결과죠.”
-이나바우어가 ‘준나바우어’로 불리면서 시그니처가 될 줄 알았나요.
“(웃으며) 아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냥 잘할 줄 아는 기술 중 하나라 넣은 건데 반응이 좋아서 뿌듯했죠. 여운을 주고 싶다는 제 의도와도 맞아떨어졌고요. 그래서 그 이후 프로그램마다 넣고 시간도 늘려서 하게 됐어요.”
‘차준환’ 하면 레이백 사이드웨이 스핀도 빼놓을 수가 없다. 마치 하늘에 왼팔을 매단 듯 든 채 상체를 옆으로 젖혀 회전한다. 제자리에서 돌아야 하는 스핀의 정석을 보여주는 데다 자세가 우아해 탄성을 자아낸다.
-레이백 사이드웨이ㆍ백워드 스핀도 정말 최고죠.
“원래는 스케이트 날을 잡고 도는 헤어컷 스핀을 했었어요. 그런데 평창 올림픽 선발전 시즌에 그 동작을 하다가 손목을 다쳐서 그 이후로는 하지 않다가 레벨을 채우려고 고안한 동작이에요.”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그렇게 제대로 스핀하는 선수는 정말 드문데요.
“연습을 해서 그렇게 됐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거든요. 기술적인 부분만 신경 쓰기보다는 다른 요소까지 전반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었어요. 그 노력의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 같아요.”
-차 선수에게 ‘타고났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본인이 느끼기엔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의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
“노력의 영역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보면 그걸 알 수 있어요. 저는 어떤 기술이든 쉽게 된 게 없거든요. 예를 들어 점프 하나를 뛸 수 있게 되면 연계되는 다른 점프까지 자연스럽게 되는 선수가 있어요. 저는 그렇지 않았죠. 하나하나 다 노력해서 만들어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공들여서 연습했기 때문에 탄탄하게 실력을 쌓게 되지 않았나 해요.”
그 피와 땀, 눈물의 시간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 시간 덕분에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됐을 테다.
그는 어린 시절엔 배우였다. 만 네 살부터 여덟 살까지 CF를 찍고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스케이트를 신은 건 우연한 일이었다. 집 근처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겨울방학을 맞아 열린 스케이트 캠프에서다. 처음 탄 건 쇼트트랙.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해 피겨 스케이트로 바꾸고 달라졌다. 기다리는 부모에게 “조금만~ 조금만 더 탈게”를 반복하다 문 닫을 시간이 돼서야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링크장을 나서곤 했다. 그렇게 피겨를 좋아하니 스케이트 캠프가 끝나고도 계속 배우게 된 것이다.
-스케이트를 타는 게 그렇게 좋았나요.
“빠르게 탈 때 속도감이 좋았어요. 자유로운 느낌도 있었고요.”
-어릴 때 꿈은 뭐였어요.
“아주 어릴 때는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연기할 때는 배우가 꿈이었고요.”
-스케이트를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평생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재미있었고 좋아서 하다 보니까 계속하게 됐죠. 피겨도 관중 앞에서 하는 연기잖아요. 배우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어릴 때 부끄러움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여기까지 왔네요. (웃음)”
만 8세에 피겨를 시작했으니 이른 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피겨를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그의 성적은 좋았다. 2012 종합선수권에서 주니어 부문 1위를 한 데 이어, 같은 해 국제대회로는 처음 출전한 아시안트로피에서 어드밴스드 노비스 부문 1위를 했다. 그는 탱고 음악(La Cumparista)에 맞춰 절도 있는 연기를 해 관중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트리플 토루프-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해 기술적으로도 우월했다.
-첫 국제대회였던 아시안트로피 경기 기억이 나나요.
“그럼요. 그때 목표가 ‘1등 하고 싶다’였어요. 실제 1등을 했죠. 승부욕으로 나간 대회였어요. 트리플 5종 점프를 모두 뛰던 때거든요. 그런데 성장기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2종밖에 안 되는 거예요. 아시안트로피 대회에 갔더니 다른 선수들은 트리플 5종을 다 뛰더라고요. 그걸 보고는 갑자기 승부욕이 생겨서 현지에서 연습해서 5종을 다시 뛸 수 있게 됐어요.”
-현지에서요?
“네. (웃음) 그게 되더라고요.”
-우연히 시작했지만 피겨를 좋아했고 나중에는 승부욕도 생긴 거네요. 생각이 좀 더 진지하게 바뀐 계기도 있나요.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요. 운동선수로서 올림픽 출전은 꿈이잖아요. 특히나 평창 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라서 더 특별했어요. 피겨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아가 피겨가 더욱, 확 좋아졌어요.”
-만 열여섯 살, 남자 싱글 선수 중 최연소로 출전했죠.
“맞아요. 시니어 데뷔 시즌이었죠. 당시 부상도 심하고 스케이트에 문제도 있었어요. 주니어 부문에서 좋은 시즌을 보낸 뒤였는데 힘든 시간이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어요. 다행히 선발전 3차에서 결과를 뒤집고 출전하게 돼서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올림픽이란 경험은 제게 불을 붙였어요. 처음으로 내가 어떻게 선수 생활을 그려나가고 싶은지 생각도 하고, 확신도 생겼어요. 자기주도적으로 바뀐 거죠. 내가 타고 싶은 스케이팅,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 그렇게 나를 중심에 두게 된 거예요. 성장의 계기가 됐죠.”
-그 이후 ‘나의 스케이팅’이 된 거군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올림픽이 그런 경험이더라고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메달을 따냐 못 따냐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그 꿈의 무대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있죠. 올림픽을 경험함으로써 많은 걸 바꾸고 성장하게 됐어요.”
-그래서일까요. 이후 시즌마다 성장하는 게 보였어요. 베이징 올림픽에선 무려 5위로 뛰어올랐잖아요.
“이전보다 더 열정을 갖고 피겨를 하게 됐죠. 그런데 시즌마다 순탄하게 흘러가진 않았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베이징 올림픽은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서 준비하게 돼서 훈련 환경이 바뀌기도 했고요.”
-훈련이 아주 고될 텐데, 어떻게 견뎠나요.
“단순해요. 아무 생각 없이 했어요. 하하. 그게 제겐 일상이니까. 또래 친구들이 학교 가서 공부하고 학원에 가듯이 저는 링크장에 가서 운동을 했을 뿐이죠. 이제는 제 직업이 됐고요. 피겨만이 가진 매력이 있어요. 거기다 저 자신을 중심에 둔 목표도 생겼죠.”
-피겨가 잘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힘든 시기란 건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 때, 발전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클 때 오더라고요. 그런 때는 평소대로 하기보다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서 차분하게 훈련해요. 그렇게 욕심을 버려가면서 차근차근 다시 해나가는 거죠. 해 보니 그게 극복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뭔가를 이룬 이들에게는 과정에서 얻은 지혜가 근육마다 각인돼 있기 마련인가 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게 슬럼프겠죠.
“슬럼프란 건 어쩌다 한 번이 아니고 자주 오기도 하거든요. 겪다 보니까 내게 맞는 해법도 찾게 됐죠.”
-독하다는 소리도 좀 들었을 것 같아요.
“(웃으며)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시즌 시작할 때마다 단기 목표를 세워요. 가장 눈앞에 닥친 대회부터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차근차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차 선수가 피겨를 엄청 좋아한다고 가까운 이들이 말하던데요.
“좋아하니까,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요. 어느 정도로 좋다고 해야 하지…(웃음)”
-차 선수는 ‘실패’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경기가 생각나요. 그간 경험을 떠올려 보면 공통적으로 항상 도전하고 싶을 때 실패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구성적으로 더 어려운 기술에 도전할 때 그렇죠. 그런데 그걸 흔히들 말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발전하려면 실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실패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임해 왔죠.”
-그런 경험 중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요.
“2015년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요. 주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할 수 있는 시즌이었어요. 그런데 선발전을 앞두고 발목 골절 부상을 당했어요. 정도가 심했죠. 한 달만 쉬고 1, 2주간 준비해서 선발전에 나갔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죠. 그 시즌에 프로그램 구성도 높인 상태였는데 그것도 낮추지 않고 시합에 나갔죠. 오기로 한 거예요. 실수를 많이 했죠. 하하.”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처절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프리 프로그램 첫 점프로 트리플 악셀을 뛰다가 그는 힘없이 넘어지고 만다. 그런데 원래 구성과 달리 다음 점프도 트리플 악셀을 시도한다.
-그때 왜 그랬나요.
“되던 트리플 악셀이 안 되니까 끝까지 해 보려고 오기와 고집을 부린 거죠.”
-경기를 망쳤는데, 끝나고 어땠나요.
“저의 잘못은 분명했어요. 부상 이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해서 나간 것도 문제인데 프로그램 구성까지 낮추지 않았으니까요. (선발전에서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예요.”
-그때의 열네 살 차준환에게 말을 건넨다면요.
“무모하지만 열심히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겨를 사랑하는 열정만큼은 똑같구나!”
-또 다른 실패의 경험도 있나요.
“평창 올림픽 1차 선발전요. 결국 3차에서 결과를 뒤집긴 했지만 첫 선발전에선 (1위보다) 22점 정도 뒤졌거든요. 그때도 부상이 심했어요.”
올림픽 출전권은 세 차례의 선발전 점수를 합산해 결정한다.
-부상을 당하면 심리적으로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크게 다른 건 없어요. 부상이 있다고 해서 그걸 염두에 두면 약해진다고 생각해서요. 경기할 땐 부상을 잊고 해요. ‘나는 지금 부상당한 상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점프를 뛸 때도 망설이거나 흔들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게 베스트예요.”
-그것도 훈련의 결과겠죠. 아무리 그래도 그게 되다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상황이 어떻든 최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돼요.”
-다음 실패도 있나요.
“음, 2019~2020 시즌이 생각나요. 그때 프로그램 구성 난도를 높였거든요(쇼트와 프리 합쳐 쿼드러플 점프를 5개로 올리고, 쇼트에선 쿼드러플 살코와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을 첫 점프로 배치). 어려운 구성을 밀어붙이기에 적기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랬나요.
“베이징 올림픽을 목표로 하면, 그때가 두 번째 시즌이었거든요. 그다음 시즌은 올림픽 직전 시즌이니 어려운 도전을 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2019~2020 시즌에 마음껏 도전해 보고 그다음 시즌은 올림픽 대비에 매진하고 싶었죠. 도전해서 깨지더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던 저의 계획은 결국 실패했죠. 하하.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강하게 반대했거든요. 코치님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원했어요. 시즌 후반엔 구성을 낮췄죠.”
-그래도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고, 그렇게 해 보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구성을 낮추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죠. 물론 그게 좋을지 나쁠지 몰라도요. 뭐가 맞냐 틀리냐가 아닌 전략의 문제죠.”
-피겨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가 성장기의 체형 변화가 시작되는 때인데, 차 선수는 어땠어요.
“키가 한창 클 때 그랬죠. 1년에 10㎝씩 자라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점프할 때 축부터 많은 게 달라져요. 어느 날은 4회전 점프를 하는데 계속 안 되는 거예요. 하루 종일 뭘 해도 안 되기에 나중에는 점프 연습을 멈췄어요. 안 될 때 계속하면 안 좋은 자세가 몸에 기억되니까.”
-그런 때 심리적으로 위축되진 않나요.
“힘들긴 하지만 그것에 빠져 있는 성격은 아니에요. ‘왜 이렇게 안 되지’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죠. 뭐라도 해요. 쿼드러플 점프가 안 되는 때엔 트리플로 낮춰 연습을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언젠가부터 “경기를 즐기려고 한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경기할 때 제 목표는 등수나 점수가 아니라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것이거든요.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의 물음표가 꼬리표처럼 붙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 왔어요. 후회는 실수를 했다고 남는 게 아니더라고요.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경기를 했다면 후회가 남지 않아요.”
-경기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하는 건 언제부터 그랬나요.
“음, 아주 옛날부터 그랬어요. 성격인 것 같기도 하고요. 경기가 안 풀리면 속상하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경기엔 다음이 있으니까요. 침체돼 있기보다 보완할 생각을 하죠.”
-성적이 좋은 시기에 오히려 멘털 케어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번 시즌요.
“저는 (세계선수권이나 팀 트로피에서) 2위를 해서가 아니라 연습한 걸 다 해내서 기뻐요. 팀 트로피를 준비하면서도 세계선수권 결과 때문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그렇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건 이미 끝난 경기니까.”
-선수는 경기에 만족하더라도 점수가 그에 타당하게 따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때는 어떤가요.
“피겨라는 종목은 남과 겨루는 경기가 아니잖아요. 온전히 나의 경기죠. 경기할 때는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서 숨을 쉬고 요소를 하나씩 해 나가요.”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지금!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훈련을 중심으로 살아서 그런지 시간이 정말 빨리 흘렀어요. 특히 스무 살까지.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현재를 그렇게 남기고 싶어요.”
-‘성장의 아이콘’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때요.
“맞는 것 같긴 해요. (웃음) 꾸준하게 나만의 페이스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지켜서 뿌듯해요.”
-우연히 방학 때 피겨를 배우게 돼 여기까지 온 게 참 신기해요.
“그래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만약 그때로 돌아가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면 피겨는 하지 않을 거 같아요. (손사래를 치며)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피겨는 이미 해 봤잖아요. 다른 걸 경험해 보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강한 편이거든요.”
그렇게 도전하고 배우길 즐기는 차준환에게 실패는 중요한 게 아닐 테다.
-차준환만의 인생사전에서 ‘실패’라는 단어의 의미를 적어본다면 뭘까요.
“음, ‘실패란 당연한 경험, 또 다른 시작. 뭐든지 쉽게 되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실패는 당연한 과정이다.’ 그래서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지키려고 해 온 삶의 도, 실패에서 얻은 지혜는 무엇인가요.
“크고 작은 실패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실패하는 과정을 즐기자는 거요. 도전을 통한 실패는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길의 끝에서 내가 원하던 성공을 맞이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다 쏟아부었기에 후회 없는 실패라면 얼마든지요!”
-그런 차준환에게는 메달만이 목표는 아니겠네요.
“내가 원하는 구성으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펼치는 것, 그게 제 목표죠. 어릴 때는 (방송 인터뷰에서) 올림픽에 나가 3등 안에 들고 싶다고 말했지만 지금의 제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에요. 메달은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죠.”
그는 “징크스는 없지만 루틴은 있다”고 말해 왔다. 특히 경기 땐 그 루틴을 철저하게 지켰다. 경기 전날엔 프로그램 음악을 들으면서 잤고, 경기 날엔 에너지바 하나를 하루에 걸쳐 조금씩 먹으면서 준비한다. 공식 연습이 끝나고 나선 경기장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런데 최근 그는 그 루틴들을 깨버렸다. “루틴을 모두 깨는 게 루틴이 됐다”며 웃었다. 그마저도 현재의 나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노력일 거다.
그의 행적 하나하나는 한국 남자 싱글 피겨의 새 역사였다. 그는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굵직한 국제대회의 포디엄에 오른 유일한 한국 남자 피겨 선수다.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진 끝에 만들어진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지금의 차준환을, 자기 자신을 믿는 피겨 스케이터를 만들었다. 그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궁금한 건 그래서다.
‘차준환의 시즌’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