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옴진리교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1995년 3월 20일,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독극물 사린가스가 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월요일, 직장인들이 한참 출근하는 시간대에 살포된 독극물은 1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6,300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신흥종교 옴진리교 교인들이 벌인 일이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과 옴진리교 교인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특히 옴진리교 교인들을 인터뷰한 '약속된 장소'에서 그는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냉전 체제가 붕괴되어 더 이상 좌도 우도, 전도 후도 없는 상황이 출현한 바로 그 시점'임에 주목한다. 하루키는 소설가답게 이 시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석틀로 작동하는 '이야기'가 사라진 시기로 보고,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옴진리교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흥미롭게도 옴진리교의 이야기를 만든 주요 인물들은 이과와 기술 계열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의 핵심 교리는 기술을 이용해 현대인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낮춤으로써 개개인의 힘을 증대시킨다는 것이었다. 명상과 수행이 강조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스트레스 가득한 현대인이 삶을 끝낼 수 있도록 독가스를 살포한다는, 전대미문의 대참사로 종결되었다.
하루키는 폭넓은 세계관과 복잡한 현실에 대한 통찰을 결여한 이 '순수한 이야기'가 1932년 제국 일본이 건설한 만주국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고 본다. 만주국이 건설되었을 때 일본에서의 지위를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난 이들 중 대부분이 바로 전문 기술자와 테크노크라트들이었다. '오족협화'(五族協和,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 만주족, 몽골, 중국, 다섯 민족이 협력하여 화목하게 살아보자는 만주국 건국이념)와 '팔굉일우'(八紘一宇, 전 세계가 한 집안이란 뜻으로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건 구호)가 이들이 헌신한 '이야기'였다. 이들은 이 이야기의 이상에 걸맞은 신천지를 건설하고자 했지만 제국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다.
그러나 만주국 이야기는 정말 끝났을까? 옴진리교와 사린가스 사건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오염수 방류 계획은 전문 기술자와 테크노크라트들이 주도하는 이야기(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 기술)의 힘을 새삼 환기시킨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나름의 '순수한 이야기'를 제공하며 교세를 확장한 신흥종교가 있었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기독교복음선교회 JMS(이하 JMS)'다. 1970년대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한 JMS가 1980년대 중, 후반 교세를 급속히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명확한 이야기가 사라져 가던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오랜 독재 체제에서 오는 피로감, 탈냉전과 소비 사회화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각으로 이어졌다.
사실 JMS의 이야기는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 신흥종교 및 이단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지금은 구약과 신약에 이은 성약(聖約)시대라거나 교주가 재림 예수의 육체로서 성약시대의 주인공이라거나 원죄는 하와가 정조를 뱀에게 빼앗긴 것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모두 1950년대 한국전쟁 전후로 급속히 성장한 통일교 등에서 체계화한 이야기다. 그런데 복잡다단한 현실에 대한 통찰을 결여한 단순하고도 매뉴얼적인 이야기는 만주국과 옴진리교 이야기와도 통한다. 단순하고 분명한 이야기가 변화의 시기를 사는 사람들을 빠르게 안심시키기 때문이리라.
2009년, 교주 정명석이 성범죄 유죄판결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면서 이 조야한 이야기는 끝이 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만주국 이야기가 옴진리교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으로 반복되고 있듯 JMS의 이야기도 쉽게 종결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JMS 이야기를 회생시킨 이는 여성이었다. 최근 공범자로 구속된 여성 목사 정조은이 바로 그이다. 그녀는 성폭력 가해 사실이 드러난 정명석이 해외로 도피한 2000년대 초반 JMS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JMS 내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는 그녀의 설교와 이미지에 끌려 입교한 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의 가장 큰 공로는 남성 교주가 저지른 성폭력의 어둡고도 폭력적인 이미지를 씻어내고 그 자리를 '여성적인' 이미지로 채워 JMS의 이야기를 다시 쓴 것이리라. 2000년대 중반, 그녀는 '여성 성령분체(聖靈分體)'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는 JMS 교리에서 예수와 유사한 지위다.
정조은은 그러나 JMS의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교주 정명석을 메시아라며 주인공으로 떠받드는 이야기에서 그녀의 지위와 권력은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야 가능한 것이었기에. 남성에게 권력이 집중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양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원을 얻는다. 여성의 삶이 가족 내로 한정되었던 시절에는 아버지의 딸, 오빠의 여동생, 남편의 부인, 아들의 어머니 등 가족적 관계를 통해서 지위와 자원을 얻었다. 이제 더 이상 여성의 삶은 가족 내로 한정되지 않지만 남성과의 관계는 여전히 중요한 지위와 자원 획득의 통로다. 정조은은 교주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돈, 인기, 권력을 얻는 길을 택했다.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MBC 'PD 수첩 - JMS, 교주와 공범자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JMS, 달박골 정명석은 어떻게 교주가 되었나?'는 여러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정조은이 정명석의 중요 공범임을 설득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이 범죄자 남성의 공범이 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성찰은 아쉽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악을 뒷받침하고, 악의 이미지를 씻어내는 역할을 기꺼이 자임한 여성들. 나치 체제하의 많은 독일 여성들이 그랬다. 1986년 미국 여성 역사학자 클라우디아 쿤츠는 '아버지 나라의 어머니들: 여성, 가족, 그리고 나치 정치학'이라는 논쟁적인 책을 출간한다. 이 책은 쿤츠가 1970년대 중반 연구를 하기 위해 만난 독일의 보통 사람들이 들려준 나치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억압적 독재와 인종 말살이 연상시키는 어두운 기억이 아니라 가까운 가족들 간의 친교, 스포츠 활동, 휴가, 이웃 공동체의 결속, 높은 도덕적 수준, 경제적 안정이라는 밝고도 즐거웠던 경험을 그리운 듯 회상하곤 했다. 여성들은 나치 치하 생활 세계에서의 즐거움과 안정을 책임진 이들이었다.
당시 독일은 총통 히틀러를 정점으로 하여 순수 아리안 혈통의 남성 병사들 간 위계질서가 핵심인 '아버지 나라'였다. 또한 여성들은 나치의 발흥 이전부터 오랜 3K 의식(Kinder·아이들, Kirche·교회, Küche·부엌) 속에 갇혀 있었다. 나치는 이 3K 의식을 자신들의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지우는 데 활용하고자 했다. 여성들에게 독일 민족 어머니의 이름으로 화목한 가족 및 이웃관계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 여성들에게는 평범한 나치 시민의 자리가 주어졌다. 많은 독일 여성들이 차별받는 소수자로 남기보다 그 길을 택했다. 그리고 이는 유대인 등 차별받는 다른 소수자 배제에 대한 동참으로 이어졌다.
우리와 먼 나라의 옛날 이야기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JMS의 이야기는 왜 어떤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을까? 남성 JMS 신도들은 어떤 면에서 그 이야기에 매혹되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치의 이야기가 1900년대 초 독일 사회를, 옴진리교 이야기가 1990년대 일본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JMS 이야기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사회의 어떤 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이비 종교의 선정적 사건으로 소비하고 말 것이 아니라 보다 진지한 관심으로 우리 시대 '아버지 나라'의 여성들과 남성들에 대해 함께 숙고하기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