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잡아 끈 '달과 6펜스'

입력
2023.04.26 22:00
27면

20세기 초반의 영국 런던. 성실한 가장이자 증권회사 주식 중개인이었던 남자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 그런데 가출 이유가 여자나 노름에 미쳐서가 아니라 화가가 되고 싶어서란다. 너무나도 유명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도입부다. 나는 이 소설을 고등학교 때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작은 책으로 읽었다. 어린 나이에 읽기에는 조금 버거운 내용이었는데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일탈은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게 화가 폴 고갱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대목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광고계의 동료 한 분이 "마흔 살쯤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게 보일 것"이라고 쓴 추천사를 읽고 다시 그 소설을 구입해 읽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지난주 '독하다 토요일'의 고전소설 리스트에 이 작품을 또 올렸다. 나는 왜 이 소설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권하는 것일까.

토요일에 모인 사람 중 오랜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는 박 회원은 '내용을 떠나 구성 자체가 진짜 영리한 소설'이라는 소감을 내놨다. 소설가로 성공한 것은 물론 전쟁 때는 스파이 노릇까지 완벽하게 해냈다는 서머싯 몸에겐 딱 어울리는 평가다. 그러나 여성인 블란치를 단순한 존재로 그리거나 그의 남편 더크를 뚱뚱하게 그림으로써 겉모습이 둔한 사람은 감각도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태도는 거슬린다는 윤 회원의 불만도 있었다. 100년 전 소설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면이 새삼 눈에 띄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독서모임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에 읽었더라도 다시 읽으면 늘 새로운 게 보이게 마련이고, 또 혼자 읽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읽으니 보다 입체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것도 독서모임만의 묘미다.

"그 사람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 걸세."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의 이 대사가 정말 마음에 든다. 지금이라도 누군가에게 팬심을 나타내고 싶을 때 써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 문장이다. '달과 6펜스'란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마르고 닳도록 다루어 새삼 거론하기도 민망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 "왜 5나 10처럼 딱 떨어지는 수가 아니라 6펜스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아마도 그때까지 영국에서는 십진법 대신 십이진법을 쓰고 있었을 것이라는 윤 회원의 추측이 있었는데, 모임이 끝나고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영국에선 1971년 전까지는 십이진법 화폐가 통용되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좇아가는 내용은 위험하니 직장인들에겐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 회원의 농담이 있었다. 가뜩이나 회사 다니기 싫어 죽겠는데 이런 책을 펼치면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책에 금서니 필독서니 하는 라벨을 붙이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라고 생각한다. 멀쩡한 책도 시험에 나온다고 하면 읽기 싫어지는 법인데 필독서라는 이름이 붙으면 얼마나 매력이 떨어지겠는가. SF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이들에게 특정 서적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심어주고 싶다면 그 책을 필독서에 배정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편성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