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간 쇼호스트' 루시 나오니 다 팔렸다...홈쇼핑은 업계 때 아닌 디지털 전쟁 중

입력
2023.05.02 12:00
13면
가상인간 쇼호스트로 내세우고
배경음악은 AI가 맞춤형 제작
무대 제작 필요 없는 미디어월도


"한 달 동안 똑같은 가방을 메야 한다면, 블랙 가방을 메시겠어요, 화이트 가방을 메시겠어요?"


# 지난달 18일 롯데홈쇼핑의 정식 쇼호스트로 나선 가상인간 루시가 모바일 방송 도중 밸런스 게임을 시작했다. 잠시 후 실시간 채팅창에 "블랙 가방을 메겠다"는 답변이 쏟아지자 루시는 시청자 취향에 맞춰 다음 상품으로 검은색 가방을 소개했다.

그는 또 친구 만날 때 입었던 착장을 직접 보여주고 가방과 어울리는 다양한 스타일링 꿀팁도 알려줬다. 시청자들은 루시에게 격려의 말을 남기거나 실제 사람과 하듯 교감을 나눴다. 이날 루시는 약 160만 원인 새 명품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가방과 지갑 등을 판매했는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접속자가 몰리면서 최대 80만 원에 달하는 지갑 3종은 완판(완전 판매)를 기록했다.

홈쇼핑 업계가 디지털 기술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으로 유통 구조를 바꾸면서 여러 기술을 반영한 차별화 콘텐츠로 홈쇼핑에 다소 차가운 반응을 보여 온 MZ 고객의 눈길을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시청자 줄고 송출수수료 늘고…돌파구 절실


루시는 데뷔부터 완판 행렬을 기록하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실험 방송에서 가방을 25분 만에 다 팔았던 루시는 1월 비비안웨스트우드 가방과 2월 30만 원에 달하는 미니 건조기도 30~40분 만에 품절시켰다. 루시는 대역 모델의 행동과 목소리를 촬영한 영상에 루시의 얼굴을 합성하는 식으로 활용 중이다. 롯데홈쇼핑은 루시의 목소리를 따로 만들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대역 없이도 활동할 수 있게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KT알파 쇼핑은 음악 플랫폼 지니뮤직과 손잡고 업계에서 처음 인공지능(AI) 음원을 도입했다. '밝은', '통통 튀는' 등 특정 방송 프로그램의 특징을 키워드로 넣으면 AI가 어울릴 만한 시그널송(주제가)을 직접 만든다. 회사 관계자는 "AI가 만든 음악은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울뿐더러 방송의 성격과 딱 맞는 음악을 적용하면서 방송의 질을 높이는 효과까지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무대 세트를 따로 만들 필요 없이 LED 스크린으로 배경 영상을 띄우는 미디어월 도입도 확대 중이다. 미디어월은 보다 다양한 배경을 연출할 수 있고 방송 제작비 절감, 방송 준비 시간 단축 효과도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제품에 잘 어울리는 배경으로 더 몰입감 있게 방송을 즐길 수 있게 된다.

CJ온스타일은 올해 전 스튜디오에 미디어월을 전면 도입하고 배경에 적용 가능한 디지털 그래픽소스를 400여 종 자체 제작했다. 회사는 지난해 미디어월을 시험 운영해 전년 대비 제작비는 20% 이상, 방송 준비 시간은 50% 줄이는 효과를 봤다. 현대홈쇼핑도 전체 6개 스튜디오 중 3개를 미디어월로 바꿨으며 롯데홈쇼핑은 증강현실(AR) 등을 활용한 가상 스튜디오도 구상 중이다.



판매는 가상인간이, 배경음악은 AI가 책임진다


홈쇼핑이 디지털 전환에 힘을 쏟는 이유는 고객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해 온 텔레비전을 보는 인구가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요 업체의 영업이익은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CJ온스타일(39.7%), 롯데홈쇼핑(23.5%), 현대홈쇼핑(16%) 등이 두 자릿수 이상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져왔던 '집콕' 혜택이 끝났고 송출수수료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도 크다는 호소가 나온다.

송출수수료는 홈쇼핑이 유료방송사(IPTV)에 채널을 배정받고 지불해야 하는 '채널 자릿세'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홈쇼핑 매출이 몇 년 동안 정체된 사이 방송 매출액 대비 송출 수수료 비중은 2017년 39.4%에서 2021년 60%까지 늘었다.

코로나19를 전후로 온라인이 대중의 핵심 소비 채널 역할을 하면서 홈쇼핑 업체들 역시 주요 활동 무대를 텔레비전에서 모바일로 옮겨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특히 미래의 큰손인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유튜브 채널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콘텐츠 커머스에 공을 들이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의 충성 고객인 4050세대는 물론 20대까지 고객층을 넓히려면 이들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바일, 디지털로 마케팅의 무게중심을 옮길 수밖에 없다"며 "제작 노하우를 어떻게 디지털 기술에 효과적으로 접목시킬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