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앞장서겠다는 비대면 진료, 재진이라도 시작하라

입력
2023.04.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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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원격의료) 제도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대상을 재진 환자로 제한할지 초진도 포함할지 등을 놓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그제에 이어 어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산업계, 의료계, 약사계의 이해가 아니라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관점에서 신속하게 법적 근거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와 국회는 앞서 의료계와 합의한 대로 재진 환자에 한해서라도 우선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국민들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한시적 허용으로 비대면 진료를 충분히 경험했다. 3년여간 3,661만 건 시행됐는데, 코로나 재택치료를 제외하면 60대 이상 이용자가 39.2%였다. 고령층 건강 관리에 비대면 진료가 크게 기여한 것이다.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비율도 올라갔다. 안전사고는 단 5건이었고 경미했다. 이용자 500명에게 물었더니 재이용 의향이 87.8%나 됐다.

다음 달 세계보건기구(WHO)가 예상대로 코로나19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하고 우리도 감염병 위기 단계를 내리면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 된다. 정부는 시범사업 형태로 지속하겠다지만, 효용성이 확인된 정책을 후퇴시킬 이유가 없다. 의사, 약사의 집단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20년 가까이 시범사업에만 머물렀던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할 골든타임이 지금이다. 김영태 신임 서울대병원장까지 “원격의료 선두에 서겠다”고 약속한 만큼 의료계의 변화도 가시화할 것이다.

대상 환자를 어디까지 적용할지, 약 배송에 따른 오남용을 어떻게 막을지, 수가는 얼마로 조정할지 등 조율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법제화 이후 풀어가면 된다. 의사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는 의료 공백을 메울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기득권 눈치 보느라 환자의 건강권과 편익이 달린 입법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