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에 수입금지 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의 대체 공급을 자제하라고 미국이 한국에 요구했다는 보도의 파급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곧바로 우리나라를 향해 우려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미중 반도체 전쟁에 우리나라가 본격 참전한다면 아무런 실익 없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덥석 미국의 요구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제 미국 백악관이 한국 정부에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 반도체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지 말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최근 마이크론의 안보 침해를 이유로 심사에 착수하자, 중국 내 메모리 반도체 공급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까지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자국 기업도 아닌 동맹국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떠안기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FT도 “동맹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역할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실은 “논의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정도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이 요구를 수용한다면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다분하다. 중국은 이미 날 선 반응이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국가 정부와 기업이 시비를 구별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지킬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어제 공개된 산업통상자원부 통계(2021~22년)를 보면 수입액 1,000만 달러 이상 품목 중 중국 의존도가 90% 넘는 품목이 266개다. 희토류 영구자석(90%) 인조흑연(93%) 수산화리튬(99%) 등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무기화할 수 있는 핵심 광물이 상당수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공급망 다변화만 되뇔 일이 아니다. 오늘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사안이 의제로 오른다면 철통 방어를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끈끈한 동맹이라도 이익의 균형은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