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가 24일 보도됐다. 한일관계 정상화의 긴요성을 강조한 맥락이지만 반성 없는 일본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은 부적절하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19일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 80년 추모식에 참석해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과거 독일이 저지른 범죄를 사죄했다. 우리가 일본에 독일처럼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지만 사과하지 않는 것을 옹호해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윤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일본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결코 해선 안 될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박용진 의원은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면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는 무엇이었냐”고 질타했다. 이를 정쟁으로 여기지 않기 바란다.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대통령 발언이 양국관계 정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오역을 주장하는 국민의힘은 더 황당하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민주당 의원들이) 발언의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 선전·선동에 앞장섰다”며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한국어 발언 원문을 25일 트위터에 공개했다. 대통령의 논란 발언을 가짜뉴스, 거짓 선동으로 돌리는 게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소동 때 “사실과 다른 보도”라며 언론 탓을 했고, 국가안보실 도청 의혹이 대통령실 졸속 이전 때문 아니냐는 민주당에 대해선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한다고 몰아세웠다. 인정하지 않고 남 탓을 하면 국민 불신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