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에 2억 원 넘는 아우디 고성능 전기차 RS e-트론 GT와 내연기관 스포츠카 R8 시리즈를 만드는 독일 바덴뷔템베르크주 네카르줄름의 '뵐링어 호페' 공장에는 한국에선 보기 힘든 여성 생산직(기술직) 직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전기차 내부 전선을 달거나 부품을 잔뜩 실은 전기 트레일러를 운전하는 등 역할도 다양했다. 아우디 공장 중 가장 최근(2014년) 지어진 이곳의 자동화율은 약 90%. 특히 차량 성능과 안전성을 결정짓는 10%의 세부 공정을 위해서는 장인이 나서는데 이 중 상당수가 여성 기술자라고 한다.
22일(현지시간) 뵐링어 호페 공장에서 만난 볼프강 샨츠 아우디 스포트 생산 총책임자는 "아우디 내에서도 가장 훈련이 잘된 인력을 데려온다"고 했다. 공장 관계자에 따르면 생산 라인 내 여성 비율은 약 30%로 사실상 모든 공정에 배치됐다. 성별 관계없이 오롯이 실력으로 인력을 꾸렸는데도 10명 중 3명이 여성이라는 얘기다. 이는 생산직에 여성 공개 채용을 망설이는 현대차·기아와는 딴판이다.
아우디 관계자는 "아우디는 모두의 기회와 조건이 동등하다"며 "직원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최선의 역량을 발휘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채용 담당자는 모든 지원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미래의 팀 동료가 될 수 있는 현장 직원을 면접관에 포함시켜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공정한 선발이 이뤄지도록 한다.
네카르줄름과 본사가 있는 바이에른주 잉골슈타트 등에서 최고 직장으로 꼽히는 데 차별 없는 채용과 더불어 차별 없는 복지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①유연한 근무시간 체계를 비롯해 ②법정 육아휴직 후 최대 4년까지 재고용이 보장되는 무급휴가 연장 제도 ③직원 자녀 대상 어린이집 돌봄 서비스 ④휴가 및 연휴 기간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네카르줄름과 잉골슈타트 공장에서 약 1만 명의 여성이 아우디를 만들고 있다.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자동차 공장에서 여성 생산직이 늘어난 데는 공장 자동화도 큰 몫을 했다. 아우디의 미래 기술 전진기지로 불리는 뵐링어 호페 공장에서는 큰 로봇이 무거운 차체와 배터리를 나르고 정밀 로봇이 지름 5㎜의 볼트까지 조립하고 있다. 차체는 인공지능(AI) 로봇에 실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데 공장 내 5G 연결망을 활용해 데이터를 빠르게 보내 공정이 순조롭게 돌아가게 했다.
샨츠 총책임자는 "이곳서 생산된 RS e-트론 GT는 3D 스캔과 머신러닝 프로세스, 가상현실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모든 작업을 디지털 공간에서 재현했다"며 "실제 차량 생산 시 제조 과정이 완벽하게 돌아가게 가상현실에서 생산 계획을 미리 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만들어 낸 가상의 공장에서는 몇 년 치 시간표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중심의 공장 설계가 확대되고 힘 대신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만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면서 여성이 생산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아우디는 탄소중립 공장으로의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우디에 따르면 지난해 초 네카르줄름 공장은 100% 친환경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샨츠 총책임자는 "아우디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쓰고 어쩔 수 없이 배출하는 탄소량을 상쇄하기 위해 인증을 받은 기후 보호 프로젝트의 탄소 배출권을 사용하고 있다"며 "2025년까지 모든 공장에서 친환경 전기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