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검은 정장 차림의 법조인 10여 명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에 모였다. 법정에 있어야 할 이들이 이날 초등학교로 모인 이유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뺑소니)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의 사건 현장검증 때문이었다. A씨는 지난해 12월 만취(혈중알코올농도 0.128%) 상태로 운전하며 언북초 앞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차로를 지나던 중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3학년 B군을 들이받아 숨지게 하고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장검증은 사고 당시 재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이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 등을 보면 A씨는 B군을 친 뒤 현장에서 21m 떨어진 자택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그는 차를 주차장에 대고 몇 초가 지난 뒤에야 사고현장으로 돌아왔다. 검찰은 이를 두고 "즉시 정차하고 구호 조처를 했어야 했다"며 A씨가 사고를 내고 도주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B군을 들이받으며 차량에 전달된 충격을 집 앞에 있는 배수로를 넘는 것으로 오인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학생을 숨지게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도주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A씨는 이날 현장검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최경서 재판장은 20여 분간 현장검증을 하면서 몇 차례 고개를 갸웃거렸다. A씨 측 주장이 일리가 있으려면 배수로가 어느 정도 높았어야 하는데, 실제로 도로면과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실무자(법원 직원)들에게 A씨가 방지턱으로 오인했다는 지점에 대해 "(사진을) 자세히 찍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A씨 측 변호인도 "생각보다 턱이 낮다"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사고 시점에 차를 주차할 수 있었는지도 논쟁거리가 됐다. 검찰은 "인근 공간을 고려하면 A씨가 차를 (사고 직후) 주차장이 아니라 도로에 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A씨 측은 "차를 멈출 수는 있었지만, 피고인 본인은 무언가를 밟고 사람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사고현장과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양측 주장을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A씨의 다음 공판은 5월 2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