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요즘 원격근무를 놓고 전쟁 중이다. 구글·메타·테슬라 등 빅테크(주요 기술기업)들은 앞다퉈 "원격근무 축소"를 선언했고, 원격근무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맛본 직원들은 그런 회사 방침에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선뜻 호응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메타는 "업무 성과를 따져보니 사무실에서 대면근무를 한 사람이 원격근무만 한 사람보다 낫더라"며 명분쌓기에 나섰고,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으면 급여를 삭감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곳들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원격근무가 노사갈등의 주범이 된 건 직원들이 체감하는 장점 못지 않게 사측이 느끼는 단점이 크기 때문이다. 사무실 근무를 주장하는 회사들은 "원격근무 탓에 원활한 의사소통과 유대감 형성, 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어렵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곧, 유니콘] 홍용남 알로 대표
그러나 원격근무를 없애는 것만이 정답일까. "단점이 있으면 보완을 해야지,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협업 도구를 만드는 스타트업 '알로'(Allo)의 홍용남(33) 대표는 이렇게 단언한다. 한국 회사라 해서 한국 사는 사람들만 근무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고, 세대가 젊어질수록 원격근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원격근무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 대표는 대학 재학 중이던 2014년 한국에서 알로를 창업했다. 원격근무가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10년 전부터 원격근무 시대를 준비한 셈이다. 최근 그를 화상으로 만나 알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창업을 하게 됐느냐'는 평범한 질문에 홍 대표는 평범하지 않은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업'(業·부여된 과업)이었다. "나의 업이 무엇인가, 대학 때 책도 많이 보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20대가 저한테 정말 소중한 시간이니까 뭔가 의미있는 걸 하고 싶은데 간접적으로 경험한 회사란 곳은 저랑 정말 안 맞는 것 같았거든요." 그에게 돈은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이왕이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결론은 창업이었다.
대학에서 미디어학을 전공하던 홍 대표는 자신이 팀 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해결해 줄 도구를 개발했다. 공동창업자인 친구 경병현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함께였다. 온라인판 화이드보드 '비캔버스'로, 칠판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듯이 여러 사람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정리할 수 있는 도구다. 비캔버스가 투자를 유치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사 창업으로도 이어졌다. 비캔버스는 현재는 사명과 같은 알로로 서비스 이름을 바꾼 상태로, 지금까지 누적 투자액은 100억 원이 넘는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으로 한국에서 조금씩 성장하던 알로는 2019년 본사를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미국에서 살아본 적 없고, 영어를 특별히 열심히 배워본 적도 없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홍 대표에게 미국행은 그야말로 모험이었지만, 결정은 의외로 쉬웠다고 한다. "미국인 투자자가 제안을 했었어요. '좋은 사업인데 한국에선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미국은 한국보다는 원격근무가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제품과 회사가 크려면 미국으로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정적인 성장을 바랐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길이다.
미국에 가니 처음부터 반응이 왔다고 한다. 알로에 관심을 보인 회사 중 하나가 화상회의 플랫폼 '줌'이었다. 2021년 줌은 스마트폰에 여러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아 구동하는 것처럼 줌 안에서 여러 협업 툴을 쓸 수 있게끔 하는 '줌 앱스'를 출시했는데, 여기에 클라우드 기반 협업툴 아사나, 칼라우드 파일 공유플랫폼 드롭박스 등 유명 앱과 함께 알로도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서비스 중에선 유일하게 포함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팬데믹까지 확산하면서 알로는 2021년 말 월간 활성이용자수 40만 명을 넘었다. 안정궤도에 들어선 셈인데, 알로는 여기 안주하지 않고 최근 또 한 번의 도약을 시도했다. 화이트보드형 협업 툴에서, 모든 협업 툴을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는 협업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새로워진 알로는 기존 알로 툴뿐 아니라 슬랙, 줌, MS 팀즈, 구글 앱스 등 협업 툴을 누가, 얼마나, 뭘 하면서 쓰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 마디로 온라인 협업 관제탑입니다. 누가 뭘 하고 있는지가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유가 안 된다는 게 원격근무의 문제점으로 꼽히는데, 이를 해결한 거죠."
홍 대표는 올해로 미국에 넘어온 지 4년, 창업한 지는 10년째가 됐다. 경력이 쌓이다보니 창업 관련 조언을 구해오는 이들도 많은데, 그때마다 그는 오히려 "남의 말을 너무 들으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고 한다. 같은 일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특성이 '겸손'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겸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겸손하다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평가를 많이 신경쓴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겸손하려고 하다보면 '내가 이런 걸 해도 되나?' '될까?' 하면서 일을 벌이기가 어려워져요." 조금은 뻔뻔해야 일을 시작하기 쉽고, 성공할지 못 할지는 자신이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일을 완벽하게 시작하는 것보다, 일단 벌여놓고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더 쉽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이면 일단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