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한 소녀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기독교인이 됐다. 세례명은 ‘줄리아’, 일본 이름은 ‘오타’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데려가 시녀로 삼았으나, 1612년 기독교 금지령을 내린 후 신앙을 버리고 측실이 되라고 요구했다. 오타는 명령을 거역하고 유배 생활을 했다.
400여 년 동안 일본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추앙받아 온 ‘조선인 성녀’ 줄리아 오타의 친필 서한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고 최근 아사히신문, NHK방송 등이 보도했다. 오타의 동생 무라타 운나키(村田安政)를 시조로 하는 무라타 가문이 2021년 12월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 소재 하기박물관에 이를 기증했다. 박물관은 전문가의 조사와 연구를 거쳐 지난 19일 언론에 공개했다.
기증된 서신은 총 세 통으로, 이 중 한 통은 1609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수신인은 당시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 소속 사무라이였던 무라타 운나키였다. 당시 도쿠가와의 시녀였던 오타가 ‘동생과 닮은 남자가 무라타 가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상 등을 확인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손등에 푸른 멍이 있다’는 동생의 신체적 특징이 적혀 있으며, 임진왜란 중 서울에서 동생과 생이별한 경험도 적혀 있다.
오타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일본 땅을 밟기 이전에 대한 자료도 1600년대 일본에 있던 예수회 신부 등이 언급한 “고려 태생의 신분이 높은 여성” 등이 전부였다. 이씨 성을 가진 양반 출신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근거가 약했다. 일본 기독교사를 연구하는 아사미 마사카즈 게이오대 교수는 “서한을 통해 오타가 조선의 양반 출신임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조선의 수도에 쳐들어갔을 때 남매가 생이별한 체험도 본인의 말로 직접 전하고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무라타 가문은 서신과 함께 전해 내려온 반소매 옷도 기증했다. 도쿠가와 가문의 초창기 문양이 5곳에 배치돼 있어, 이에야스가 직접 입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에도 시대 초기 무사 복장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하기박물관은 오는 29일부터 6월 18일까지 이 옷을 전시할 계획이다.
오타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일본으로 데려갔다. 기독교 신자였던 고니시 부부는 소녀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약초학도 가르쳤다. 고니시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해 처형됐으나, 도쿠가와는 오타가 아름답고 총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시녀로 데려갔다. 식사 담당 등 하루 일을 마치면 밤에는 교리서를 읽고 다른 시녀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로드리게스 지란 신부는 1605년 예수회연보에 독실한 신도였던 오타에 대해 보고하며 “가시밭 속의 장미”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전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는 일본 역사의 격동기에 살면서 도쿠가와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를 거역하고 신앙을 지킨 오타의 이야기는 현대 일본인도 사로잡았다. 일본의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의 노래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를 비롯해 소설, 만화, 뮤지컬,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