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 먼저 배우는 말들이 있다. '엄마, 아빠'처럼 가족을 이르는 말, '눈, 코, 귀, 입' 등 신체어가 그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등 수를 세는 말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말들이다. 이런 이유로 모어에서 수사는 어릴 때부터 배워 익숙하게 된다.
그러나 외국어 교실에서 숫자는 그 존재감이 다르다. '원, 투, 스리, 포' 하던 때를 되새겨 보면 알 수 있듯, 학습자가 꽤 긴 시간을 들여 힘들게 넘는 벽이다. 게다가 한국어 수사는 고유어와 한자어로 두 가지이다. '3호 방, 3번 버스'처럼 무언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리고 33원처럼 값을 말할 때는 '삼'이라 한다. 그러나 횟수일 때는 '세'로 말한다. 그러하니 '오늘 3번 버스를 3번 탔다'를 한국어로 재빠르게 말하는 것이 외국인에게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뜻이 같은 '3살'과 '3세', '3달'과 '3개월'에서도 뒤에 오는 말이 고유어인지, 한자어인지를 따져 '셋'인지 '삼'인지를 골라야 한다. 그럼 '3시 3분'은 어떠한가? 한국어로 시간 말하기는 초급 단계에서 외국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제이다.
10년 전쯤, 수를 세는 규칙에 도전한 말이 나타났다. 바로 '1도 모르겠다'이다. '1도'는 '하나도 모르겠다, 하나도 없다'에서 '하나'를 대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는 '없다', '않다' 등 부정어와 어울려 '전혀', '조금도'라는 뜻의 명사라서, 수사인 '일'로 대체할 수가 없다. 2014년에 방영된 어느 프로그램에서, 외국에서 살다가 온 한 연예인이 임기응변으로 한 말이라 하는데, '연락 1도 없다, 생각 1도 없다' 등으로 확산되더니 유명 아이돌 그룹의 노래 제목으로도 등장했다.
일상언어의 규칙을 바꾸거나 충격 어법으로 강조하는 재미있는 말은 많다. 한때는 '하나도 없다'에 대한 유행어로 '한 개도 없다'를 쓴 적도 있다. '1도'에서 '일'은 '하나'보다 말이 짧고 언어유희의 즐거움도 있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1'을 읽는 두 방법에서 긴장의 끈을 잠시 놓는 편안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방송에서 시작된 말이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방송에서 쉽게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말을 흔들기는 쉬워도 길을 잃으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어렵다. '이'나 '삼'마저 뒤섞인 사례가 나타나지 않은 현상에 안도의 숨을 쉬어 보지만, 제자리를 놓친 부표처럼 멀리 가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