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축구인 100명 사면 기습 발표' '사면 철회 일방 통보' '이사진 전원 사퇴' 등으로 물의를 빚은 대한축구협회에 최근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달 말까지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해 재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어서다. 이를 테면 경기인 등 축구계 관련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던 이사회에 축구팬 등을 포함시켜 견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축구계는 '3선 연임'으로 지난 10년간 이어진 정몽규 축구협회장 체제에서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는 분위기다. '기습 발표' '일방 통보' 등에서 보듯 축구협회의 '불통' 이미지는 단단하게 굳어있다. 그런데 이를 탈피하고 바꾸겠다고 천명하고 나선 상황이다.
축구협회는 우선 지난 17일 언론계에 SOS를 자청했다.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했고, 지난 10년간 '불통'이었음을 시인했다.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축구협회 내 소통 창구를 좀 더 넓히고 견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니 약속했다. 쇄신을 더 이상 늦추지 않겠다고 언론에 호언장담했다.
축구협회가 자책에 나선 건 여론의 무서운 힘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한국 축구대표팀과 우루과이의 친선경기 직전 기습적으로 징계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을 발표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승부조작 가담자를 포함해 금전 비리·폭력 행위 등으로 제명·무기한 자격정지된 이들까지 사면한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정 협회장을 향한 노골적이고 날 선 비난도 피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눈과 귀를 틀어막고 방만하게 운영했던 대가가 비수가 되어 돌아와 꽂혔다.
아울러 축구협회의 자질 논란도 일었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마요르카) 김민재(나폴리) 등으로 구성돼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기엔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건 축구협회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대표팀 선수들의 노고가 낳은 기적이란 해석이 많다. 이렇듯 변명의 여지없이 코너에 몰린 축구협회가 택할 수 있는 건 반성과 변화밖에 없을 듯싶다.
일단 쇄신의 바람은 환영할 만하다. 그간의 과오를 인정하고 고칠 것은 고치겠다는 자세를 비판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다만 반성하고 뉘우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축구협회는 지난 한 달여 동안 협회를 향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 지난 10년간 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일까. 꼭 비판의 강도를 높여야만 고개를 숙인다는 말인가.
최근 축구협회가 귀 기울여야 할 자리가 있었다. 지난 18일 문화연대가 주관한 '위기의 축구협회, 무엇을 해야 하나' 토론회가 그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축구를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한준희 해설위원의 말이 뼈 있게 와닿았다. 현대 축구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라는 의미다. 과거처럼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제발 축구협회의 이번 행보가 요식행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