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인이 집주인과 그 아버지의 재력을 되게 많이 자랑하시고 ‘우리는 경매에 넘어갈 만한 물건은 절대 취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계약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A(27)씨는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5년 전 그날을 이렇게 떠올렸다.
2018년, 부동산에서 떼어 본 전셋집 등기부등본에는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하지만 “(중개인이) 여기 신고가가 높으니까 근저당 때문에 경매에 넘어가도 재산상 문제는 많이 없을 거다,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가 공제증서랑 이행보증서를 써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고 했다고 A씨는 말했다. 중개인의 말을 믿고 A씨는 1억1,000만 원에 전셋집을 계약했다.
중개인이 계속 재력을 자랑하던 집주인은 이른바 ‘건축왕’ 남모(61)씨의 딸(34)이었다. 아버지 남씨는 지난달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바지 임대인’으로 범행에 가담한 딸 역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역시 같은 일당이었던 중개인도 “구속 중인 걸로 알고 있다”고 A씨는 말했다. 건축왕 일당의 조직적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세사기를 눈치챈 건 지난해 7월이었다. A씨는 “집주인이 문자를 보내 금리를 감당하기 힘드니 혹시 매매를 하거나 안심전세로 전환할 생각이 있는 사람을 찾았고, 이상함을 느껴 퇴거(하겠다고) 요청했지만 12월까지 연락이 안 됐다”고 말했다. 딸은 지난해 12월 입주민을 모아놓고 “안심전세로 바꾸거나 주변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매매하겠냐고 물었다”며 “그 후 연락도 잘 안 되고 본 적은 없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전세금 1억1,000만 원을 고스란히 잃게 생겼다. 그중 9,900만 원이 전세자금 대출이다. A씨는 “대출 이자가 매달 40만 원 가까이 되고 관리비까지 다 합하면 한 달에 60만 원 가까이 나간다”며 “직장에 다녔을 때 (모은) 돈으로 충당을 하다가 지금은 부모님 손을 빌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기를 당한 후 부모님을 볼 면목도 없어졌다. 그는 “부모님께서는 아무렇지 않게 ‘잃은 돈이니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자’라고 말씀하시는데 부모님이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안 뵌 지도 좀 됐다”고 말했다. 그도 지난달까지는 일상생활도 제대로 못 할 만큼 마음고생을 했다. A씨는 “지금은 사기꾼 집단한테 얽매이고 무기력하게 사는 게 저한테 손해라고 생각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취업준비 이력서도 많이 넣고 있다”며 “사실 3월, 2월까지만 해도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두 달 새 이 지역에서 ‘건축왕 전세사기’를 당한 20·30대 청년 3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A씨는 “저희는 정부에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다”라며 “전대미문의 사건이지 않나. 현행법으로는 안 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이 사기꾼 집단들의 재산이나 부동산을 모두 환수해서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줬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