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시선이 금융 안정에서 다시 물가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은 하루 사이 유럽의 물가 추이에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다.
20일 원·달러 환율은 1,322.8원으로 전날 대비 2.9원 하락 마감했다. 장 초반엔 상승폭을 키워 올해 최고점 1,332.3원을 찍었다. 장중 1,330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 29일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그러나 장 막판 고점 대비 13원 낮은 1,319원까지 하락하는 급반전을 보였다.
장 초반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운 것은 영국 물가였다. 전날 발표한 영국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하락했으나 시장 예상(9.8%)을 크게 웃도는 10.1%에 달했다. 유로존 CPI(6.9%)는 전월의 8.5%보다 크게 떨어졌지만 근원 CPI가 소폭 올라 고물가 우려를 키웠다.
미국 물가·실물경제 지표에 긴축 우려가 고조되던 중 유럽 물가가 방점을 찍어버린 것이다. 앞서 발표한 미국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포인트 급상승해 4%대에 재진입했고, 제조업지수·주택체감경기지수는 개선됐다. 간밤 미국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고 뉴욕 3대 증시가 혼조세로 마감한 것도 '연내 금리인하' 기대가 반보 후퇴하면서다. 5월에 이어 6월에도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기대는 30%(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근접했다.
오후 환율 반전을 이끈 것도 역시 물가였다. 독일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7.5% 상승했는데, 2월(15.8%)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던 기저효과가 작용해 큰 폭 하락할 것이란 전망은 나왔지만 시장 예상(9.8%)마저 크게 밑도는 수치였다.
이날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두고 시장의 초점이 금융안정에서 다시 물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불거졌던 금융 안정 우려가 어느 정도 소화됐다는 판단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미국 중소형은행의 실적이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 '서비스와 주거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시장의 화두로 넘어왔다"고 봤다. 다만 "미국 상업 부동산 부실 우려 등 금융 안정 우려가 완전히 소화된 것은 아니어서 분위기는 재반전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날 코스닥이 2.6% 급락 마감한 것도 장 초반 영국 쇼크의 여파라는 분석이다.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최근 급등했던 2차전지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는 얘기다. 테슬라의 1분기 순이익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시간 외 거래에서 6% 급락한 것도 2차전지주의 약세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