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부담 없이도 노후소득보장 강화할 수 있다

입력
2023.04.24 04:30
25면

편집자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최대 숙제였지만, 이해관계 집단의 대치와 일부의 기득권 유지 행태로 지연과 미봉을 반복했던 노동·연금·교육개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3대 개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한다.

연금개혁 : <4> 다층적 노후소득체계


연금 선진국 유럽의 선택, 다층소득보장체계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의 성공적 운영
기초연금·퇴직연금 손질하면 한국도 가능

현대 복지국가는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유럽에서 공적연금제도가 도입될 때는 단층 구조였다. 독일은 사회보험형 공적연금제도를, 스웨덴은 조세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시일이 지나자 기초연금 국가에서는 독일형 공적연금을 기초연금 위에 얹고, 독일처럼 사회보험형 공적연금제도만 가지고 있던 나라는 기초연금을 밑에 깔았다. 한국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국민연금 하나만 가지고 있다가 2008년부터 기초연금을 추가로 도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포함해 많은 OECD 국가들이 기초연금과 사회보험형 공적연금 위에 사적연금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경로와 순서는 제각기 다르지만, 이제 웬만한 국가는 모두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갖추고 있다.

왜 복잡하게 여러 제도를 중첩적으로 쌓는가? 그 이유는 연금제도마다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형 공적연금제도는 보험료를 정기적으로 오래 납부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맞는 연금제도다. 그러나 보험료를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사회보험형 연금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이들에 대한 노후소득보장은 일반 재정으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이 담당해야 한다. 또 오랜 기간 보험료를 열심히 냈다 하더라도, 중상위 소득계층은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들은 사적연금을 통해 적정한 노후소득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한국도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늬만 다층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층별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지지 않고, 기대하는 기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2,100만 명이 넘고 수급자도 600만 명이 넘는 노후소득보장의 중추적 제도이다. 그러나 사회보험형이기에 보험료 미납자를 중심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노인빈곤율이 OECD에서 가장 높은 40%에 육박하는 이유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이 저소득 노인에게 기초보장을 잘 해주면 문제가 해결될 텐데 그렇지 못하다. 기초연금을 노인의 70%에 주다 보니 빈곤을 탈출할 만큼 연금액을 올려주기가 쉽지 않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중산층 이상 은퇴자의 필요 소득이 충족되기 어렵다. 이 욕구는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이 충족시켜 줘야 한다. 그런데 이 또한 부실하다. 한국의 고용주는 퇴직연금의 보험료 납부 의무를 지고 있다. 이 액수가 2021년 한 해만 해도 무려 49조9,000억 원이다(같은 해 노사가 지급한 국민연금보험료 총액은 51조3,000억 원). 그런데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퇴직금처럼 일시금으로 받는다. 장사 밑천으로, 자녀 결혼 자금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은퇴 전에 회사 옮기면서 인출해 써 버리거나 회사 다니면서 주택 구매 등에 사용하기에 연금화할 돈 차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연금의 한계를 보완할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한창인데, 사실 국민연금만큼이나 개혁이 필요한 제도가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다.

우선 기초연금은 스웨덴식으로 고쳐야 한다. 스웨덴은 1999년 전체 노인에게 지급하던 기초연금을 저소득 노인에게 한정해서 지급하는 기초보장연금으로 바꾸었다. 기초연금 수급자가 전체 노인 100%에서 40%로 축소되었지만, 급여보장액을 두 배로 높일 수 있었다. 저소득 노인에 대한 소득보장이 크게 강화되었다.

퇴직연금은 연금 역할을 할 수 있게 중도인출과 일시금 수령을 제한하고 매월 연금으로 수령하게 만들어야 한다. 네덜란드의 기업연금도 사적연금이지만 소액을 제외하고 연금형태로만 수령 가능하다. 이게 너무 강한 조치라면, 최소한 스위스 퇴직연금처럼 연금자산의 25%까지만 일시금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개혁에 추가로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제도합리화를 통해 모든 계층이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