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날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침묵시킬 순 없다.”
온갖 부패 의혹을 파헤치던 중 의문사한 콜롬비아 기자 라파엘 모레노가 지난해 7월 살해 협박을 받았을 때 남겼던 결의다. 마치 예언처럼, 그의 '고발'은 사후에도 이뤄졌다.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각국 언론들이 6개월간의 후속 취재를 거쳐 18일(현지시간) ‘라파엘 프로젝트’를 공개한 것이다.
생전 모레노는 유난히 ‘적’이 많았다. 온라인 매체를 운영하며 콜롬비아 코르도바 지역의 정치인과 광산회사, 준군사단체까지 대상을 불문하며 비리를 캤다. 코르도바는 마약 밀수 거점인 동시에 이 나라에서 가장 부패가 심한 지역 중 하나다.
영국 가디언은 모레노에 대해 “권력 견제에 탁월한 기자였다”고 평했다. 예컨대 2018~2019년 모레노는 코르도바주의 한 기반시설 공사에 1억 달러(약 1,324억8,000만 원)의 예산이 배정됐지만 실제 착공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에스페디토 듀케 코르도바 시장의 횡령 의혹도 제기했다. 그의 마지막 취재 대상도 정치 유력가 ‘칼레’ 가문이 건설 공사 재료 확보를 위해 굴착기로 자연보호구역의 모래를 빼돌리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더러운 비밀’을 너무 깊이 파헤친 탓일까. 지난해 7월 모레노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메모와 함께, 자신의 오토바이 트렁크에서 총알을 발견했다. 살해 협박이었다. 그리고 3개월 후, 그는 코르도바의 작은 마을 몬텔리바노에 있는 한 식당에서 신원미상 남자의 총격을 받고 즉사했다. 당시 나이 37세였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암살되기 며칠 전 모레노는 위험에 처한 언론인을 돕는 프랑스의 비영리단체 ‘포비든 스토리즈’를 찾았다. 그러고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 취재를 이어가고 보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자의 자료 보관을 돕는 ‘세이프박스 네트워크’에 수백 개의 취재 메모도 백업했다.
가디언과 프랑스24 등 전 세계의 32개 매체가 응답하고 나섰다. 고인의 이름을 딴 ‘라파엘 프로젝트(링크)’가 시작됐다. ‘라파엘’ 팀은 6개월 동안 코르도바의 무허가 광산 개발과 일대 환경 문제를 파고들었다. 광산 회사 ‘카르보마스’가 환경 면허 없이 탄소 광산을 개발했고, 그 결과 주민들 건강이 악화했다고 본 모레노의 취재를 이어간 것이다.
취재팀은 광산 3곳을 추가 취재해 △인근 마을에 비정형 피부질환이 빈번하다는 점 △주민들의 혈액 내 니켈 함유량이 기준치의 10배를 웃돈다는 검사 결과를 입수해 이를 폭로했다. 또 생전 모레노가 주력했던 듀케 시장 일가의 비리도 추가로 고발했다. 전 세계 기자들의 연대로 모레노의 저널리즘 정신이 사후에도 꽃을 피운 셈이다.
그럼에도 콜롬비아 언론계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해 미국 비영리조직 ‘언론인보호위원회’는 최근 20년간 콜롬비아에서 95명의 언론인이 취재 중 살해당했다고 추산했다. 가디언은 “모레노의 죽음 후 지역 매체의 동료들도 모두 협박을 받았다”며 “대부분 퇴사하거나 고발 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