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태우는 제주들불축제, 대표축제서 애물단지로 전락

입력
2023.04.19 15:26
산불 위험과 환경훼손 등으로
오름 불놓기 부정적 여론 커져
개선 요구에 폐지 의견까지 제기



제주지역 대표축제로 꼽히는 ‘들불축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고, 환경훼손과 산불위험 등이 크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제주시에 따르면 제주들불축제는 과거 야초지 해충구제 등을 위해 마을별로 불을 놓던 제주의 옛 목축문화를 재해석한 것으로 1997년부터 개최됐다. 당시 북제주군(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와 구좌읍 덕천리를 오가다 2000년부터 새별오름이 축제장으로 지정됐고, 개최 시기도 2013년부터 3월로 정해졌다. 특히 들불축제의 대표 행사인 오름 불놓기는 오름 한 면을 불 태우는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 평균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과 도민들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축제장을 찾고 있다. 하지만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지난해에는 강원·경북 지역 산불로 행사가 취소되거나 변경된데 이어 4년 만에 대면행사로 치러진 올해 들불축제 역시 ‘불’ 없는 축제가 됐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정부가 산불경보 3단계(경계)를 발령한 데 따른 조치였다. 올해 축제에서는 오름 불놓기 외에도 달집태우기, 횃불 대행진, 불꽃놀이 등 불과 관련된 6개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해 들불축제를 계기로 제주도와 제주시청 누리집에는 들불축제가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 축제라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또한 들불축제 시기가 타 지역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와 겹치면서 들불축제 방식을 개선하거나 아예 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쏟아졌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최근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제주들불축제가 우수축제로 위상이 높아지긴 했지만 개최 시기가 매우 건조한 때이고 산불에 상당히 취약한 수준이기 때문에 들불을 놓는 것 자체는 상당히 어렵다”며 “불을 활용한 방식은 현대사회에 적절치 않다. 불씨를 날려서도 안 된다”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제주녹색당은 제주도민들이 직접 참여해 들불축제 개선방안을 논의하자며 제주시에 ‘들불축제 숙의형 정책 개발’ 청구인 서명부를 제출했다. 시는 숙의형 정책 개발 청구 요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한 후 제주도 숙의형정책개발심의위원회 제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숙의형 정책 개발이 받아들여질 경우 들불축제 개선 방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녹색당은 “산 전체를 태우는 행위는 기후위기 시대를 역행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도민과 함께 상황에 맞는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도민이 제대로 숙의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행정 수장이 실행하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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