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저희 집 이번에 경매 넘어갔어요'라는 글이 올라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우리 집도 경매에 넘어갈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19일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A아파트 공동출입문에는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입니다', '집을 보러 오신 분도 또 다른 피해자나 공모자가 될 수 있습니다' 등의 글이 적힌 빨간색과 노란색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17일 육상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다 건축업주 남모(62)씨로부터 전세보증금 9,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숨진 박모씨가 살던 곳이다.
이날 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민 강모(28)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공동출입문뿐 아니라 집 현관문에는 '침 바르는 이곳은 우리들의 피와 땀'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경매를 막아보려는 간절함이 묻어 있는 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함이 녹아 있었다. 다음 달 출산을 앞두고 있는 강씨는 "집을 보러 온 부동산업자들이 현수막과 스티커를 떼어버린다"며 "17일 숨진 박씨도 사망 전에 현관문 스티커들이 뜯어져 집 앞에 버려져 있다고 했는데 스트레스와 압박이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파트 12층 박씨 집 앞에는 국화 세 다발이 놓여 있었다. 현관문에는 '힘들어했을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기억하겠다'라고 적힌 메모가 단수 예고장과 함께 붙어 있었다. 같은 아파트 11층에 사는 김병렬(44)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60가구 중 20가구가 경매에서 낙찰돼 길거리로 내쫓기거나 내앉을 위기"라고 말했다.
A아파트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B연립주택. 지난 14일 전세사기 피해자 임모(26)씨가 숨진 채 발견된 곳이다. 이곳 주민들도 최근까지 현수막을 설치하거나 현관문에 스티커를 붙여 피해를 호소했지만 "벌금을 물린다"는 말에 지금은 전부 떼어냈다고 한다.
스티커만 사라졌을 뿐 주민들 속은 이미 까맣게 변해버렸다. 보증금 8,000만 원에 전세계약을 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는 주민 강모(33)씨는 "(겉으로 볼 때는 조용하지만) 지금 여기 사람들은 매일매일 불안감에 떨면서 살고 있다"며 "경매 날짜가 미뤄져 한시름 놓았지만, 다른 주민들은 경매가 진행 중이라 막막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B연립주택 관리 직원들도 또 다른 피해자다. 직원 유모(74)씨는 "건축업자 남씨가 구속되고 관리업체가 바뀌면서 직원 6명이 적게는 45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정도의 퇴직금을 못 받고 있다"며 "자녀가 있는 직원도 있는데 당장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없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인천시에 따르면, 최근 두 달 새 피해자 3명이 잇따라 숨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가구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2,479가구에 달한다. 이 중 1,523가구(61.4%)는 이미 임의경매에 넘어갔고, 87가구는 낙찰돼 매각됐다.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B연립주택 피해자 단체 대표는 "매일 정부에서 뭘 추진한다, 뭘 건의했다 하는데 현장에선 달라진 게 전혀 없다"며 "일전에 (임씨) 유족들이 오셔서 '정부가 다 해결해 준다고 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며 안타까워했는데, 실제로 해결된 건 거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