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석학인 유발 하라리에게도 동심(童心)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영상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인류 이야기 시리즈 '멈출 수 없는 우리(주니어김영사 발행)'를 출간한 소회를 털어놨다.
그의 저작 '사피언스'는 2011년 영문판 초판 발간 이후 전 세계 65개 국어로 2,300만 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신간은 사피엔스처럼 인류의 역사를 공통 소재로 하나, 8~12세 정도 아동의 문해력에 맞춰 쓰였다. 이해를 돕는 그림을 풍성하게 삽입했고, 농담이나 스토리, 대화 형식을 활용해 아이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공을 들였다는 게 하라리의 설명.
"성인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면 자신 없는 부분은 길거나 어려운 문장으로 감출 수 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먹히지 않죠. 쓰는 내내 '학자로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되새긴 이유입니다."
갑자기 왜 '어린이 책'일까. 그는 "세계관이 형성될 시기에 역사와 과학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아직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우월하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는 아이는 없죠. 또 나이 든 뒤 생각을 바꾸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라리는 최근 부상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두고 "쇼크"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인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원천은 '이야기'였다. 세계의 거대 종교, 건국신화, 화폐 경제 등 인류 문명의 기반이 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인간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AI)이 이야기를 복사하는 걸 넘어 창작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향후 2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대. 그래서 역사학자 하라리는 역사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우리는 변화의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역사는 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공부입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죠."
4부작으로 이뤄진 책은 매년 1권씩 출간될 예정이다. 인류가 아프리카 사바나의 유인원이었을 때부터, 온갖 과학기술을 동원해 신처럼 되어버린 오늘날의 모습까지의 역사를 담을 예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600만 년 전 인간과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 조상의 출현부터 인간의 확산,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까지를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입체적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