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 스님은 짐작이나 했을까... 해발 800m 화산마을의 '풍경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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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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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군위 삼국유사면·부계면

요즘 군위군의 마을마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에 대한 기대감과 추가 요구 사항을 적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경북 군위와 의성 일부 지역이 공항 부지에 포함되는데, ‘대구경북통합’이라는 명칭을 쓰자니 실제와 좀 괴리가 생긴다. 두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합의에 따라 올 7월부터 경상북도 군위군은 대구광역시에 편입된다. 대구에서 북쪽 팔공산을 넘으면 군위군이다. 넓은 분지 지형인 남쪽과 달리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깊다. 삼국유사면을 비롯해 부계면 산성면은 골짜기만큼 유서 깊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보각국사 일연으로 뭉쳤다, 삼국유사면

지난 2021년 군위 고로면은 삼국유사면으로 지명을 변경했다. 고려 시대의 승려 일연(1206~1289)이 삼국유사를 지은 곳이라는 게 결정적 이유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7년(1281)에 저술한 역사책으로, 단군 기자 대방 부여의 자취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두루 수록하고 있다. 더불어 불교에 관한 기사·신화·전설·시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삼국사기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나, 원판은 사라지고 조선 중종 때 재간된 5권 3책이 전해지고 있다.

보각국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은 인각사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의상대사가 세웠다고도 하고,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도 전해지는 절이다. 고려 충렬왕이 왕명으로 크게 중건하고 토지를 내렸고, 일연은 이곳을 은거지로 정하고 삼국유사를 비롯한 불교 서적 100여 권을 저술했다.

이 정도면 절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여길 텐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극락전과 국사전 두 채의 법당 건물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동떨어져 있고, 주변에선 굴삭기가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실상 절터만 남아 고찰의 풍모는 고사하고 절간의 기본적인 짜임새도 갖추지 못했다. 마당 한쪽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건물 석재가 그나마 유서 깊은 절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하다.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보각국사탑과 나란히 자리 잡은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적당한 크기에 옅은 미소를 품은 원만한 인상이다. 조각 기법으로 볼 때 10세기에서 1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보각국사탑은 일연 스님의 부도탑이다. 원래 인각사 동쪽 2km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으나 1928년 외지 사람이 묘를 쓰기 위해 서편으로 50m쯤 옮겼고, 1978년 현재 위치로 다시 이전했다. 원래 자리는 아침에 해가 뜨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모신 일연 모친의 묘를 비추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깊은 산골짜기였을 절터는 현재 2차선 도로와 바로 맞붙어 있다. 도로 맞은편에는 군위군을 두루 적시는 위천이 흐르고 물굽이에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병풍을 형성하고 있다. 행렬을 이룬 날카로운 바위 조각이 마치 기린의 뿔을 닮아 인각사(麟角寺)라 했다는데, 정작 그 명칭은 학이 노닐만한 곳이라는 학소대다.

군위군은 학소대에서 위천을 따라 약 1.5km 산책로를 조성해 일연테마로드라 이름했다. 산책로 끝은 일연공원이다. 명칭은 공원이지만 실상은 삼국유사 야외전시관이라 할 만하다. 산책로를 따라 향가의 공간, 고승의 공간, 건국신화의 공간, 설화의 공간 등이 이어진다. 향가의 공간에는 서동요, 도솔가, 헌화가, 처용가, 제망매가, 찬기파란가, 모죽지랑가 등이 나열돼 있다. 설화의 공간에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탄생,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세웠다는 감은사 설화를 담은 만파식적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학창시절 별개의 작품으로 알고 있던 수많은 고전문학 작품이 사실은 삼국유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삼국유사가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에서도 길이 남을 저술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공원은 넓은 부지에 풋살장과 캠핑장 등을 갖추고 있는데 산책 나온 주민을 제외하면 이용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천 건너편 수직 절벽에는 인공폭포를 설치해 놓았는데 가동 시간을 표시하지 않아 언제 방문해야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일연공원 바로 위는 2010년 완공한 군위댐이다. 삼국유사면 소재지와 붙어 있는데, 산중에 형성된 푸른 호수 덕분에 유명해진 곳은 정작 따로 있으니 바로 화산마을이다.

뜬금없이 유명해진 산꼭대기 화산마을

화산마을은 화산 정상(827m) 바로 아래 펑퍼짐한 구릉에 자리 잡은 고지 마을이다. 지대가 높으니 전망이 뛰어난 건 당연지사다. 수려한 산세에 둘러싸인 군위댐 호수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니 사계절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마을은 1962년 정부에서 인근 화전민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제공하면서 형성됐다. 농토를 개간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고랭지 채소를 가꿨지만 근래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들의 생업도 주로 관광업으로 바뀌고 있다. 외지인들까지 들어와 어떤 사람은 펜션을 운영하고, 어떤 사람은 카페를 차렸다. 가장 전망이 뛰어난 언덕에는 풍차 모형 전망대를 세우고 주변에 꽃을 심어 화사하게 가꿨다. 약 30여 가구 터줏대감 주민들은 대부분 연로해 사실상 농사일이 힘에 부칠 나이인데, 그래도 비탈밭에 간간이 사과꽃이 화사하게 펴 있다.

마을에는 풍차전망대와 하늘전망대가 있다. 여행객이 주로 가는 곳은 군위댐이 바로 보이는 풍차전망대지만, 더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전망대에 오르면 화산마을 풍경도 함께 보인다. 하늘전망대 바로 옆에 서애 류성룡이 화산을 찾아와 맑은 옥정의 샘물을 마시며 읊었다는 ‘옥정영원(玉井靈源)’이라는 칠언절구가 새겨져 있다. “누가 이 화산에 밭을 일구려 하는가 / 신선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구나 / 여보시게 내게 구름사다리 빌려주시구려 /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을 캐리로다.” 번역이 좀 매끄럽지 못하지만 멋진 전망에 바람까지 시원한 고산 풍광이 한눈에 그려진다.



빛깔 고운 샘물은 어디에 있을까? 마을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계곡이 나오는데, 얕은 제방에 담긴 물빛이 말 그대로 옥빛이다. 이곳에는 마을 이전에 산성이 있었다. 계곡을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높이 4m의 성벽 흔적이 남아 있다. 화산산성은 조선 숙종 35년(1709) 병마절도사 윤숙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하는데, 거듭되는 흉년에 질병까지 만연해 완공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화산마을까지는 약 7km 구불구불한 산길로 연결돼 있다. 관광객이 늘면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 폭을 넓혔지만 각별히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마을 안 도로는 폭이 좁아 일방통행으로 운영한다. 안내판을 무시하고 무작정 가까운 길만 고집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제2석굴암이 아니라 ‘군위삼존석굴’

군위에서 이름난 불교 유적은 인각사가 아니라 부계면 군위삼존석굴이다. 지상 20m 바위절벽에 지름 4.25m, 깊이 4.3m 굴을 파고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에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을 세워 놓았다. 불상 바로 앞까지 계단이 놓여 있지만 관람객은 올라갈 수 없고, 아래 절 마당에서 올려다봐야 한다. 공식 명칭은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이다.

이 석굴은 700년경 만들어져 경주 석굴암보다 연대가 앞선 작품이다. 8세기 중엽 세워진 석굴암의 모태라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안내판에는 ‘제2석굴암’을 병기하고 있다. 석굴암의 명성에 기댄 표기인데 본래의 가치를 깎아내린 듯해 조금은 불편하다.



삼존석굴 아래는 산중에서도 제법 넓은 평지 지형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한밤마을은 돌담길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대청(중서당)을 중심으로 이어진 골목이 투박하고 정겨운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그 길이가 무려 10리(4.8km)가 넘는다. 잠시 제주도의 어느 마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돌담 사이사이에 터를 잡은 고택이 마을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한밤마을은 950년경 부림 홍씨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돌담의 역사도 1,000년 세월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대야(大夜)라 불렀으나 이후 대율(大栗)로 고쳐 대율리 한밤마을이 됐다. 마을의 중심부의 남천고택은 홍씨 집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군위군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대청과 이 집을 기억해 두면 여러 갈래로 뻗은 돌담길을 걸을 때 위치를 가늠하기 편리하다.

군위=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