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 좋아하는 대상을 추종하는 행위가 사업이 됐다. 이른바 팬덤 비즈니스다. 요즘 뜨고 있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2021년 출범한 신생기업(스타트업) 비마이프렌즈다.
이 업체는 어떤 대상을 추종하는 행위, 즉 '덕질'을 돈 벌 수 있는 사업으로 바꾸는 정보기술(IT) 솔루션을 개발해 필요로 하는 곳에 제공한다. 이기영(47) 비마이프렌즈 공동대표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팬덤 비즈니스의 실체와 미래를 짚어봤다.
"팬덤은 현상이고 팬덤 비즈니스는 사업이죠." 이 대표는 팬들이 조직화하는 단계가 팬덤이라면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사업을 팬덤 비즈니스라고 정의했다. 즉 팬덤을 통해 돈 버는 사업이다. "한마디로 팬들과 관계를 깊게 만들고 여기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죠."
이를 위해 이 업체는 '비스테이지'라는 IT 도구를 제공하고 컨설팅으로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 "팬덤 사업을 위해 손발이 돼주는 회사입니다. 필요하면 머리도 빌려주죠."
재미있는 것은 팬덤을 팬과 스타의 관계에 한정 짓지 않는 것이다. 이 대표는 팬덤이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고 본다. "팬덤은 연예인부터 유튜브 창작자, 제품, 회사 등 어디서나 형성될 수 있어요. 분야나 국경을 가리지 않죠."
제품도 이야기를 부여하면 팬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죠. 브랜드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면 각 제품도 팬덤을 만들 수 있어요. 이것이 곧 브랜드 전략이죠."
팬덤을 만드는 것은 창작자나 브랜드 전략가의 일이지만 이를 수익 사업으로 바꾸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팬덤 비즈니스도 여타 사업처럼 여러 위험 요소가 있어요. 이를 줄여야 실패 가능성이 줄어들죠. 많은 곳에서 팬덤 비즈니스를 고민하지만 경험과 도구 등 몇 가지 요소가 부족해 하지 못하는 것을 비마이프렌즈에서 솔루션을 제공해 물꼬를 터줘요."
이때 필요한 솔루션, 즉 도구가 '비스테이지'다. "비스테이지는 무대 뒤 공간을 뜻하는 백스테이지를 의미해요. 우리가 주목받지 않고 팬덤 비즈니스를 펼치는 기업들이 주목받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비스테이지는 팬과 소통할 수 있는 팬페이지를 만드는 기능, 각종 상품을 사고팔도록 전자상거래 및 결제 등을 지원하는 종합 솔루션이다. 인터넷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여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이용하는 웹 방식과 모바일 전용 소프트웨어인 앱을 이용하는 방식을 모두 지원한다. 또 전 세계를 겨냥한 만큼 우리말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도 지원한다. "팬페이지 개설자가 페이지 구성부터 각종 기능까지 자유롭고 세밀하게 정할 수 있어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쉽게 만들 수 있죠. 팬들에게 월 이용료를 받고 콘텐츠 관람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등 팬페이지를 운영할 수 있고, 각종 상품을 돈 받고 팔 수 있도록 결제 기능까지 들어갔죠."
기본적으로 비스테이지는 다달이 이용료를 내는 구독형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담스러우면 콘텐츠나 상품 등을 판매할 때마다 일정 수수료를 나눠주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구독형과 수수료 방식 중 어떤 것이 좋을지 고객사와 논의해 결정하죠. 수수료 방식도 고객사 사업 형태에 따라 모두 달라요."
연예기획사나 기업이 팬덤 비즈니스를 직접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이 업체에 의뢰할 필요가 있을까. 이 같은 의문에 이 대표는 어떤 연예기획사 사례를 예로 들었다. "모 연예기획사가 팬덤 비즈니스를 하려고 외부 IT 업체와 계약을 맺었어요. 대표는 콘텐츠 담당자들이 원하는 내용을 IT 개발자에게 전달했죠. 그런데 이 과정이 지옥이었어요. 콘텐츠 담당자와 개발자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죠. 개발자들은 끊임없이 알고리즘에 들어갈 조건을 요구했는데 콘텐츠 담당자들은 스토리를 강조하고 있으니 나아가지 못했어요. 결국 해당 연예기획사는 팬덤 비즈니스 개발을 포기했죠. 팬덤 비즈니스는 블로그나 팬페이지 하나 만들어 놓는다고 저절로 되지 않아요. 맞춤형 IT 솔루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비스테이지는 콘텐츠 담당자들이 원하는 기능을 바로 반영할 수 있도록 여러 패턴으로 만들어 사전 구성해 놓았다. 따라서 필요한 기능을 가져다 붙이면 된다. "어떤 콘텐츠에 어떤 솔루션을 써야 하는지 비즈니스 패턴에 따라 사전 구성해 놓았어요. 커뮤니티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 물품 판매 기능 등 다양하게 세분화했죠."
덕분에 비스테이지로 만든 팬페이지는 유료와 무료 개설자 모두 합쳐 1,000개 이상이다. 이 가운데 유료 고객이 얼마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프로게임단 T1과 KT롤스터, 농심 레드포스를 비롯해 프로축구팀 FC서울 등이 팬페이지를 개설했어요. 가수 카라도 7년 만에 재결합하며 우리말 영어 일본어 등 다국어로 팬페이지를 만들었죠. 이 밖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4', 온라인영상서비스(OTT) 업체 티빙, 간송미술관 등도 비스테이지로 팬페이지를 만들어 각종 상품 판매와 설문조사, 팬 관리 등을 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올해 매출 목표를 100억 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비스테이지를 발표해 채 1년이 되지 않은 사업이어서 아직 매출과 영업이익을 공개할 단계가 아닙니다. 고객사가 잘돼야 함께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여서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사업을 올해 많이 구상해 올해 100억 원 매출을 올려야죠."
투자는 지금까지 379억 원을 받았다. CJ와 GS그룹, 새한창업투자, 드림어스컴퍼니 등에서 팬덤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다. 지난달 미국 벤처투자사 클리블랜드 애비뉴도 49억 원을 투자하며 동참했다.
직원은 1년 사이 두 배로 늘어 100명을 넘어섰다. "IT 솔루션을 만들기 위한 개발자가 60명입니다. K팝, 브랜드 전략, 팬덤 관리자, 콘텐츠 기획자 등 다양한 경험자들이 모였죠."
이 대표는 서울대에서 기계항공공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석사를 마쳤다. "대학에 진학할 때 개발자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경제학을 공부하며 즐거웠어요. 그래서 IT와 경제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죠."
그의 바람은 SK텔레콤 입사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그는 독특한 이력을 밟았다. 그는 유명한 1세대 해커 출신의 위의석 전 SK텔레콤 전무(현 세나클소프트 대표) 밑에서 전화앱 'T전화'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맡은 것이 SK텔레콤의 음악서비스 '플로'다. 이때 그는 개인화 추천 음악 서비스를 구상했다. "순위표에 오른 1~100등까지 노래 위주로 듣는 콘텐츠 소비가 잘못됐다고 봤어요. 왜 각자의 취향을 음악 서비스가 반영하지 못할까 의문이 들었죠."
음악 순위표를 걷어내고 개인 추천 서비스를 하겠다는 그의 의견에 내부 반대가 심했다. "톱100 순위표를 빼면 돈 벌기 힘들다는 이유로 저항이 컸어요."
2018년 개인화 서비스를 접목한 플로는 2019년 아이리버에 흡수됐고 다시 2019년 드림어스컴퍼니로 바뀌었다. 그때 그는 SK스퀘어와 SM이 지분을 갖고 있는 드림어스컴퍼니의 초대 대표를 맡아 3년간 일했다. "드림어스컴퍼니 대표 시절에 팬덤 관리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날로 팬덤 덕분에 음악 이용이 늘어나는데 이를 다른 방식의 사업으로 풀어볼 수 없을까 고민했죠."
고민 해결을 위해 그는 2021년 드림어스컴퍼니에서 비마이프렌즈에 투자를 결정했다. 비마이프렌즈는 팬덤 비즈니스 사업을 목표로 서우석 공동대표가 2021년 창업했다. 이때 맺은 인연은 투자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공동대표 제의를 받고 지난해 4월 비마이프렌즈에 합류했다. 이직의 변은 간단했다. "팬덤 비즈니스의 끝을 보고 싶었어요."
그가 이직하며 염두에 둔 것은 세계 시장을 향한 가능성이다. "전 세계에서 팬덤 비즈니스만큼은 제일 앞서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팬덤 비즈니스는 한국에서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 자체가 없는 시장이고 우리가 가장 앞서 있어요. 해외는 우리만큼 팬덤 비즈니스를 연구하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그는 올해 팬덤 비즈니스의 도약을 예상한다. "팬덤 비즈니스를 해보지 않은 곳들은 비용을 들여 팬페이지 구축하는 것을 부담스럽고 위험해할 수 있죠. 이런 부담을 줄이려고 비스테이지를 찾는 곳들이 늘어날 것으로 봐요. 따라서 올해 비스테이지에서 성공적인 팬덤 비즈니스 사례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운명 공동체인 회사의 성공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모두 경험했어요. 따라서 대기업 장점과 스타트업 장점을 잘 엮으면 진짜 재미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어요. 협업과 분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기업의 능력과 투명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의 장점을 결합해야죠. 그래서 여기 모인 사람들이 5년 뒤에도 계속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