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서 10대 투신 생중계... 'SNS 라방' 어쩌나

입력
2023.04.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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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방 출동에도 극단 선택 막지 못해
라이브방송, 한 번 노출되면 삽시간 확산
모방행위, 집단 트라우마 등 심각한 폐해
SNS 등 실시간 콘텐츠 규제망 강화 시급

서울 강남의 고층 건물에서 10대 청소년이 투신해 숨졌다. 건물 옥상에서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부터 추락 후 소방 관계자가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까지 극단적 선택 전 과정이 그가 켜놓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에 담겨 그대로 송출됐다. 마약, 총기 등 다른 반(反)사회적 콘텐츠도 여과 없이 온라인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실시간 콘텐츠는 정보를 다양화하고 즐길거리를 풍부하게 하는 등 순기능도 있지만,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탓에 폐해도 급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투신 예고, 극단 선택... 모두 SNS서 중계

17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 31분 강남구 테헤란로의 19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옥상에서 10대 A양이 몸을 던져 사망했다. 그는 40분 전 혼자 ‘옥상 정원’에 올라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건 발생 6분 전 현장에 도착해 에어매트(공기안전매트) 설치 공간을 확보하고 옥상 진입을 시도했으나, 투신을 막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돼 사망자의 이전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A양은 과거 우울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망 경위와 별개로 A양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 생중계된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5일 오후 10시쯤 온라인 커뮤니티에 투신 계획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그는 다음날 오후 2시쯤 SNS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고, 20여 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시자가 확인되지 않은 사건 영상은 17일 새벽 유튜브에 ‘강남 영상 풀버전’이란 제목으로 올라왔다. 몇 시간 뒤 유튜브 측이 해당 영상을 삭제했지만 이미 텔레그램, 트위터 등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동시성이 특징인 라이브 방송의 부정적 파급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실시간 콘텐츠의 폐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는 방송 도중 마약으로 추정되는 알약을 복용했고, 몸을 심하게 떠는 등 환각 증세를 보였다. 급기야 웃통을 벗고 괴성을 지르며 1시간 가까이 난동을 부리다 미국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런 무분별한 라이브 방송은 모방 행동, 특히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크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 인물들의 일탈 행위를 따라 했다면, 이제는 SNS를 통해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죽음이 죽음을 부르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의 범위가 대폭 넓어진 셈이다.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표 사례가 지난해 일어난 이태원 참사다. 당시 현장에서 실시간 촬영된 영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시민들은 참상을 ‘간접’ 체험해야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여과 없이 영상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성명을 낼 정도였다.

기술 못 따라가는 감시망... "플랫폼 책임 키워야"

문제는 감시체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SNS 라이브 방송은 ‘방송법’을 적용 받지 않아 벌금이나 방송 금지 등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고강도 제재망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방심위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해외 주요 플랫폼에 문제 영상의 삭제를 요청할 수는 있다. 다만 실시간 모니터링 인력이 23명에 그쳐 성인방송을 감시ㆍ감독하기도 버겁다. 여기에 사후 조치에 불과하다 보니 콘텐츠의 확장력을 제어하는 것 역시 역부족이다.

현재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방대한 모니터링의 빈틈을 메우는 방안 등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미디어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플랫폼 사업자의 자정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라이브 방송은 사후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반사회적 콘텐츠를 자동 차단할 수 있는 AI 알고리즘 기술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아울러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보다 강력한 규제 의무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장수현 기자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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