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러시아 북방함대가 북극해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러시아 국방부의 4월 11일 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훈련의 핵심은 ‘북극 항로 확보’다. 훈련 해역은 북극해는 물론, 유럽에서 북극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바렌츠해까지 포함돼 있다. 러시아는 바렌츠해에 다수의 잠수함과 군함, 해상초계기를 띄워놓고 일주일간 고강도의 대잠수함 훈련도 실시했는데, 서방 정보당국은 물론 각국 공개출처정보(OSINT) 전문가들이 주목한 점은 바로 이 대잠훈련의 목적이었다.
러시아는 이번 훈련에 최신형 특수 임무 잠수함인 ‘벨고로드‘도 참여시켰다. 상업용 위성으로 러시아 북부 세베로드빈스크 기지를 감시한 결과 벨고로드함은 이번 북극해 훈련 일주일 전인 4월 3일 기지를 출항해 바렌츠해로 나갔다. 북방함대에 배치된 수많은 잠수함 가운데 이 잠수함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이 잠수함이 ’인류 종말의 무기‘를 운용하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벨고로드는 일명 ‘포세이돈’으로 불리는 핵추진 수중 드론을 6발이나 탑재하고 있다. 이 드론은 길이 24m, 직경 1.6m의 거대한 어뢰 형상으로 개발돼 현재까지 30기가량이 러시아 해군에 인도됐다. 일반적인 어뢰보다 3배 이상 크기 때문에 벨고로드함과 ‘하바롭스크’ 두 종류의 특수 임무 잠수함에만 탑재된다.
이 드론의 추진기관은 소형 원자로다. 사실상 무제한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어 러시아 연안에서 발사해도 미국 연안에 도달할 수 있다. 일단 발사되면 수중 지형을 스스로 감지하며 항해하는데, 최대 1,000m 수심까지 잠항할 수 있고,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현존하는 그 어떤 무기체계로도 탐지·추적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연안에 도달한 이 드론은 100메가톤급 핵탄두를 폭발시켜 초대형 방사능 해일을 일으킨다. 어지간한 주(州) 하나 정도는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이어서 인류 종말의 무기로 불린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전력 가운데 현재 북방함대에 ‘임시 배속’ 상태인 제29잠수함사단은 앞서 포세이돈 운용 플랫폼인 벨고로드와 하바롭스크를 모두 휘하에 둔 부대로 2024년 1분기에 태평양함대에 정식 배치될 예정이다. 일부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벨고로드 잠수함은 이번 북극해 훈련 이후 세베로드빈스크로 귀환하지 않고, 태평양함대에 임시 전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태평양함대 지역에서는 캄차카반도의 베체빙카 기지와 극동 지역의 블라디보스토크가 배치 예정 지역으로 지정됐다. 소련 시절 운용되던 버려진 해군기지인 베체빙카 기지는 현재 시설 복구·현대화 공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입지 조건이 워낙 좋지 않고 알래스카에 거점을 둔 미군 감시 자산의 손바닥 안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벨고로드와 하바롭스크의 실질적 운용 거점은 블라디보스토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북방함대의 북극해 훈련이 시작된 지 나흘 후인 4월 14일, 태평양함대에 최고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하고 대규모 훈련을 개시했다. 일부 싱크탱크들은 이번 훈련이 오는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겨냥해 5월까지 실시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가 무력시위의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다면 북극해 훈련을 위해 이달 초 출항했던 제29잠수함사단 전력도 베링해를 통해 태평양 지역으로 전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단히 공교롭게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태평양함대에 최고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한 당일, 중국 국방부에서는 신임 리상푸(李尚福) 국방부장이 쇼이구 장관의 초청으로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글로벌 안보 협력’이다. 미국전쟁연구소(ISW)는 최근 러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해군 활동에는 중국에 보다 매력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G7 회의 기간에 맞춰 태평양 지역에서 강력한 전략자산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미·일 동맹과 함께 맞서 싸울 강력한 우군(友軍)으로 인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손을 잡게 되면, 아무리 일본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미국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잠수함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의 수중 위협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공격원자력잠수함(공격원잠) 전력은 50척이다. 미국은 이 50척을 작전배치·수리 및 정비·훈련 3직제로 순환 운용하는데, 이를 감안했을 때 상시 작전배치 상태로 둘 수 있는 잠수함 전력은 많아야 17척을 넘지 못한다. 이 17척으로 북해·바렌츠해·북극해 일대의 러시아 전략원잠에 대한 헌터-킬러 임무는 물론, 서해·동중국해와 남중국해·오호츠크해·베링해 일대에서의 중·러 전략원잠에 대한 감시·추적 임무도 맡아야 한다. 여기에 대서양 1척, 태평양 1~2척 등 작전 중인 항모 전단에 대한 호위 임무도 수행해야 한다. 잠수함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데, 이들이 담당해야 할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원잠·순항미사일 원잠은 28척에 달하며, 이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핵 비확산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까지 호주에 핵잠수함을 쥐여주려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지난해 호주에 친중 성향의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커스(AUKUS) 구상이 붕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호주는 지난 3월 13일 오커스 정상회담에서 3,680억 호주달러(한화 322조 원)을 들여 최대 13척의 공격원잠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발표는 실현 가능성 없는 공염불이다. 우선 호주는 203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최대 5척의 버지니아급 공격원잠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 직후 버지니아급 공격원잠을 건조하는 미국 조선사 측은 2032년까지 미 해군 발주량만 17척이 밀려 있고, 2024 회계연도 미 해군 예산안에도 6척 추가 일괄 발주가 포함돼 있는 것은 물론, 차세대 전략원잠인 컬럼비아급 물량도 계약돼 있어 수출용 물량을 빼는 게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심각한 잠수함 부족을 겪고 있는 미국이 자국용 물량을 줄여가면서까지 호주에 공격원잠을 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호주에서 건조되는 ‘오커스-SSN’ 외에는 답이 없는데, 이 잠수함은 아무리 빨라도 2042년 이후에 나올 예정이다. 호주에는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위한 인프라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잠수함을 설계하는 데 20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이 호주 당국의 계산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2042년까지 계속될지 생각해보면 호주의 오커스 잠수함 계획은 실행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은 한국과 일본이 핵잠수함으로 무장하고 중국·북한·러시아의 수중 위협에 맞서 대응 임무를 분담해주는 것이다. 잠수함 기술이 부족하고, 원자력 인프라가 전무한 호주와 달리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용인해주기만 하면 10년 안에 핵잠수함을 전력화할 수 있는 원자력·조선 강국이다. 특히 한국은 반핵 여론이 강한 일본과 달리 핵잠수함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높고, 타당성 검토까지 했을 정도로 핵잠수함에 적극적인 나라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이는 최근 북한이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핵어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갖춰짐을 뜻한다. 더불어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해결사’로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북·중·러 전략적 협력이 점점 강화되는 지금,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와 이를 이용한 ‘서태평양 역할론’은 미국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고민을 해결해주면서 그 대가로 핵잠수함은 물론 다른 정치·경제적 요구도 던져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