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한 건축업자,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또다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 중 벌써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지난달에도 30대 또 다른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구조됐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대책위)와 경찰에 따르면, 17일 오전 2시 12분쯤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아파트에서 A(31)씨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인에게 발견됐다. A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던 도중 숨졌다. 그의 집에선 발견된 유서에는 전세사기 피해로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건축업자 B(62)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로,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 원에 계약 후 2021년 보증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려 재계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사는 주택은 지난달 임의 경매(담보권 실행 경매)에 넘어갔다.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전세금 일부를 우선 변제해주는 최우선변제는 소액임차인만 해당돼 A씨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A씨의 아파트는 2017년 준공돼 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최우선변제금 2,700만 원이 보장된다.
B씨는 지난해 1~7월 자신이 소유한 주택 세입자 161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7,000만~1억2,000만 원씩 총 125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28일과 이달 14일에도 B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30대와 20대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4일 숨진 C(26)씨는 B씨로부터 보증금 9,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대책위에서 활동했던 그는 최근 수도요금 6만 원을 제때 못 내 단수 예고장을 받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C씨에 대해 대책위 관계자는 "숨지기 며칠 전 어머니에게 전화해 '2만 원만 보내달라'고 했다고 들었다"며 "지난해 임의 경매에 넘어간 집이 낙찰되더라도 3,400만 원(최우선변제금) 밖에 못 돌려받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미추홀구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30대 D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에 구조되기도 했다. D씨도 B씨로부터 보증금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사는 오피스텔 상당수 가구도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태다. 대책위는 전세사기 피해가구 2,864가구에 걸린 보증금만 2,3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책위는 18일 오후 7시 인천 주안역 앞에서 피해자 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안상미 대책위원장은 "사회적 재난인 전세사기 피해를 해결하기에는 정부 대책이 너무나 미흡하다"며 "기존 대출 연장도 못 받아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무주택자로 인정해줄 테니 알아서 낙찰을 받아 보증금을 건지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 때문이 아니라 '해결이 안 될 것'이라는 좌절감 때문에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피해 주택에 대한 한시적 경매 중지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전세사기 피해지원 관련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정부 노력에도 전세사기로 인해 안타까운 일이 연달아 발생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이날 오후 미추홀구청에서 이원재 국토부 1차관, 이영훈 미추홀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긴급 현안 점검 회의에서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인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및 피해자에 대한 대출 한도 제한 폐지와 이주비 지원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유 시장은 "피해자 가구에 대한 단전·단수 유예, 심리 상담 지원 등을 시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