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찰의 경호 체계가 난타당했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 테러로 사망한 지 9개월 만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폭발물 테러를 당한 것은 경호 참사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모두 선거운동 현장에서 테러에 노출됐다. 테러범이 전문 테러 훈련을 받지 않은 사실상의 민간인이라는 점도 같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은 "경호 체계를 대폭 강화했다"고 발표했다. 요인이 참석하거나 다수의 대중이 집결하는 행사가 열리면 지역 경찰이 세운 경호 계획을 경찰청에 보고하고 심사받도록 하는 것이 강화 방안의 골자였다. 이전에는 지역 경찰이 임의로 경호를 하게 돼 있었다. 경찰청의 경호 담당자를 10명에서 30명으로 확충했고, 현장에 의무 배치해야 하는 경찰관도 늘렸다.
15일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기시다 총리의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도 강화된 경호 체계가 적용됐다. 와카야마현 경찰이 준비하고 경찰청이 심사한 계획에 따라 경호가 가동됐다. 기시다 총리 근접 경호를 위해 배치된 경찰관과 경호원들은 폭발물이 떨어진 즉시 기시다 총리를 에워싸고 대피시켰다. 그 한 명은 방탄막을 펼쳐 기시다 총리를 감쌌다.
기시다 총리가 다치진 않았지만, 테러 자체를 막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경호는 실패였다. 폭발물의 위력이 강했거나,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터졌다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기시다 총리로부터 1미터 떨어진 지점에 낙하한 소형 폭발물은 약 50초 뒤에 터졌고, 연기나 불꽃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일본 경찰이 선거 현장 경호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있다. 전·현직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선거운동 중에 불특정 대중과 접촉한다. 누가 현장에 오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지품을 점검할 수도 없다. 유세에 최대한 많은 유권자를 동원하기 위해 일정을 공개하므로 동선도 노출된다. 이번 기시다 총리 유세 일정과 장소도 이달 14일 자민당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그럼에도 일본 경찰이 안이했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테러범인 기무라 류지는 20대 남성인 데다 배낭을 메고 있어서 기시다 총리를 보기 위해 몰려든 중장년층 어민들 사이에서 눈에 확 튀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경찰은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다. 폭발물을 던지는 과정에서 그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일본 히로시마에선 다음 달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다. 요미우리신문은 “요인 경호에 여전히 빈틈이 있다는 사실이 부각됐다”며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호 체계 점검이 급선무가 됐다”고 강조했다. G7 비회원국인 중국 관영 글로타임스는 "일본이 G7 정상회의를 안전하게 개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G7 회원국 정상들과 옵저버로 초청 받은 윤석열 대통령 등이 참석한다.
기시다 총리는 16일 경찰에 경비 강화를 주문하고 “외교 일정에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경호와 안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