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현지시간) “지금 디지털 뱅킹 속도로 볼 때 (은행) 담보 수준이 적절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확인된 초고속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에 대비하자는 차원이다. 또 SVB 사태 이후 물가 안정과 함께 금융 안정을 고려하자는 공감대가 주요 국가에 형성됐다고 전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춘계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 총재는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SVB 같은 사태가 우리나라에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훨씬 안전하다”면서도 “만일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디지털뱅킹으로 (예금 인출)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한국은행 결제망에 들어오는 기관은 지급보증을 위한 담보 자산이 있는데, 결제하는 양이 확 늘면 거기에 맞춰 담보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뱅크런 등에 대비해 지급보증을 위한 은행 담보자산을 높이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총재는 “높여야 하는지 한 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안전장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감독 체제를 만들었는데 디지털뱅킹으로 인해 그 유효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며 “사람들이 돈을 빨리 옮기려고 휴대폰으로 (디지털뱅킹을) 하는데 못 돌려주고 기다리면 그사이 불안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 (미국 회의 기간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이 총재는 “물가 경로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며 “금융통화위원 대부분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열어두고 물가 경로를 보고 판단한 다음에 움직이자고 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 번 올리냐, 아니면 내리느냐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은 금융 상황이 확실하게 정리되면 한두 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소지가 큰 것으로 평가한다"는 전망도 곁들였다.
이 총재는 한국 물가에 대해 “유가나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 등 불확실성이 있다”면서도 “상반기는 3%대로 분명히 떨어질 것으로 보고 하반기에는 3% 초반이나 그 밑으로 갈 것이라는 게 예상”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부동산 문제에는 “올해 초부터 부동산 가격 하락 속도가 둔화해 작년 말보다는 걱정이 조금 덜한 편”이라며 “연착륙 가능성이 커졌고 경착륙이 안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금융시장 안정성 문제에 대해 이 총재는 “SVB 사태가 예시로 작용해 물가 안정과 함께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주요 국가에) 많이 형성된 것 같다”면서도 “미국도 SVB 사태에 따른 상황이 많이 개선됐지만 사태가 완전히 종결됐다고 보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