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철원 지역을 여행하던 스페인 청년들은 도로 위 탱크 행렬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쟁무기의 ‘실물 영접’에 흥분한 친구들이 휴대폰을 들고 “내가 진짜 탱크를 찍다니”라며 감탄을 연발하는 동안 한 친구는 겁먹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스튜디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MC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저 동넨 저게 일상이거든요, 허허.” 얼마 전 방영된 TV 예능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한 장면이다. 외국 청년들은 난생처음 보는 탱크가 신기했고, 우리는 탱크를 보고 신기해하는 청년들이 더 신기했다. 탱크가 뭐 그리 대수라고.
탱크보다 훨씬 위협적인 대량 살상무기도 우리에겐 친근하게 느껴진 지 오래다. ‘아이씨비엠’ ‘죽음의 백조’ 같은 전략무기 리스트부터 ‘발사각’ ‘사거리’ ‘전략자산’ 등 군사용어도 언제부턴가 익숙하다. 분단이라는 한반도 특수상황에 더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전쟁 같은’ 사진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 도발하면 한ㆍ미가 대응하고, 북한이 다시 반발하면서 전쟁 같은 사진, 즉 고도화된 신형 무기체계, 대규모 군사 훈련 등 전쟁에 준하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언론을 통해 꼬박꼬박 공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전쟁 같은 사진이 한국일보 1면에 등장한 경우는 총 37차례에 달한다. 대략 2주에 한두 번꼴로, 이전에 비해 4배가량이나 늘었다. 국내 주요 일간지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이다. 북한의 도발 빈도가 잦았고, 윤석열 정부 들어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조치를 취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고도화하는 무기 체계 못지않게 발전한 촬영 기술 덕분에 사진의 몰입감 또한 갈수록 더해간다. 보다 실감 나는 미사일 발사 장면을 얻기 위해 여러 대의 드론을 띄워 촬영하거나 공중훈련 모습을 전투기에서 다양한 각도로 촬영하는 정도는 이제 기본이다. 북한은 지난달 순항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면서 10곳이 넘는 지점에 카메라를 설치해 비행 장면을 입체적으로 촬영했고, 남한 역시 대규모 훈련 장면을 선제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전쟁 같은 사진의 질적ㆍ양적 확대가 오히려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무디게 만드는 느낌도 있다. ‘양치기 소년’의 교훈과 달리 늑대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다행히도 무한 반복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매스컴에 등장한 도발 사진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기보다는 “쟤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정도로 반응하거나 아예 무관심하다고 한다.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상 600~800m 상공에서 탄두를 폭파하는 북한의 시험 장면을 보면서도 나와 내 가족이 한순간 몰살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살아가기 쉽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전쟁 같은 사진의 종착점은 ‘전쟁 사진’이다. 지난 1년간 꽤 자주 신문에 게재됐던 전쟁 사진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낱낱이 전해왔다. 전쟁 같은 사진들이 하나같이 가해자와 무력의 과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전쟁 사진은 처참히 파괴된 일상과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이미 전쟁 같은 사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지만, 미래 어느 날이라도 전쟁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