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는 SUV, 나홀로 주행 땐 스포츠카로 변신

입력
2023.04.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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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 'DBX707' 시승기



보통의 스포츠카는 가족차로 적합하지 않다. 승차감이 편안하지 않고, 가족을 태워야 할 내부도, 짐을 실을 공간도 부족하다. 차량이 낮아 방지턱이 많은 골목 등 다양한 곳을 다니기에도 불편하다.

그러나 이런 불만족도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스포츠카 전문 제조사들이 4인용 세단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놓고 있어서다. 잘 달리는 주행성을 지니고 있어 아빠들의 로망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 애스턴마틴이 만든 'DBX707'을 최근 시승한 이유다.

5인승 SUV인 DBX707은 외관부터 남달랐다. 주차 공간을 꽉 채울 크기인 5m가 넘는 전장에, 전폭은 2m에 가까웠다. 내부 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축거 역시 제네시스 준대형 SUV GV80보다 105㎜나 길었다. 그런데도 곳곳을 곡선 처리해 거대하다기보다는 균형 잡힌 탄탄한 차량처럼 보였다. 전면 대형 그릴과 공기 흡입구, 23인치 휠, 4개 머플러팁 등 스포츠카 정체성도 지녔다.

차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유로운 실내 공간이 펼쳐졌다. 루프부터 트렁크까지 곡선이 이어지는 쿠페 형태였지만 2열 천장고는 180㎝ 성인 남자가 앉아도 여유로웠다. 좌석도 푹신해 손색없는 패밀리카였다. 적재 공간(632L)은 GV80보다 약 100L 더 컸고 2열 시트가 다양하게 접힐 수 있게 돼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차고·승차감 조절로, 안정적 고속주행 가능


운전석에 앉아 제조사 고유의 특성인 대시보드 가운데 있는 시동 버튼을 눌렀다. 이어 그 옆에 있는 D버튼을 다시 눌러 기어를 바꿨다. 습관이 안 된 운전자 입장에선 불편한 부분이었지만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자 이 모든 게 용서됐다. 2톤이 넘는 공차 중량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민첩하게 노면을 치고 나갔다. 제동도 잘 돼 첫 주행에 대한 불안감을 금세 떨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행모드에 따라 변화하는 에어 서스펜션 덕에 노면이 고르지 못한 골목에서 편안한 주행 질감을 보였다. SUV 고유의 폭넓은 전방 시야를 확보한 세단을 탄 듯했다.

707마력과 시속 310km를 경험하기 위해 내부순환로에 올랐다. 고속주행을 위해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꾼 뒤 페달을 밟자 속도는 바로 제한 속도를 넘어섰다. 가속 반응이 늦게 나타나는 터보래그 현상이 없었고 속도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힘이 넘쳐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가속·추월을 할 수 있었다.

또 주행모드 조절로 차체가 40㎜까지 낮아진 데다 서스펜션이 탄탄하게 바뀌어 고속주행 때도 쏠림 없이 자세가 유지됐다. 곡선 구간을 스포츠카처럼 낮게 깔리며 빠져나와 운전의 재미를 몇 배 키웠다. 3억 원이 넘는 차량 가격만 부담할 수 있다면 가족 차량으로 누구에게나 추천할 차량이다.

연비는 4.0L(V8 트윈터보) 엔진이 들어 있어서인지 공식 복합연비(L당 7.0㎞)에 못 미친 L당 4.1㎞에 그쳤다. 서울 도심과 수도권 고속화도로 구간을 섞은 60여 ㎞를 주행했고 주변에 차량이 많아 연비 측정에 불리한 환경이었다.



박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