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나흘간 회의를 그제 마쳤지만 눈에 띄는 진전사항이 없어 꺼림칙하다. 20년 만에 국회의원 전원이 모여 당리당략을 배제한 채 생산적 논의를 한다는 취지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의원 100명이 발언한 것은 긍정적이나 난상토론이 아닌 개인 생각을 차례대로 쏟아낸 ‘말잔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적 주목도가 시들해지고, 회의장이 3분의 2 이상 빈 모습도 노출됐다. 국민의힘은 의원정수 및 비례대표 축소를 내세우고, 민주당은 의원정수 유지 또는 확대, 비례대표 확대 등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정치개혁특위가 제출한 세 가지 결의안에 의원 개개인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가진 점은 전원위 소집 취지에 맞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말한 대로 “지금부터는 여야의 협상시간”이 되는 것이다. 김 의장은 “공감대가 높은 안을 수렴해 단일안을 만들 것”이라며 “이르면 5월 중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 1년 전’으로 정해진 선거구획정 법정시한은 지난 10일로 이미 지났다. 정개특위가 바통을 이어받아 불씨를 살려가야 옳다.
전원위에서 발언에 나선 의원들은 같은 당이라도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지역과 비례 등에 따라 생각이 크게 엇갈렸다. 하지만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예술이라면 향후는 여야 스스로 책임감과 능력을 시험할 무대가 남았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여당은 김재원 최고위원 등 지도부의 설화 논란과 지지율 추락, 야당은 ‘이정근 돈 봉투 폭탄’으로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차다. 선거제 개혁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처지를 방패 삼아 용두사미로 뭉갤 위험성이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중대선거구제로 대표성 강화 필요”를 언급했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최소 의원 30명 감축’을 공언했다. 사표가 50%에 육박하는 현 선거제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정치권은 국민들 볼 낯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