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군 생활을 한 지 2년도 안 되는 21세 병사가 어떻게 '1급 비밀'을 무더기 열람하고, 무단 반출할 수 있었을까. 전 세계를 뒤흔든 미국 기밀 문건 유출 사건 용의자가 주방위군 소속 '일병'으로 밝혀지면서 미 국방부 정보 취급 체계의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과 달리, 국방부는 고위급 장교뿐 아니라 일개 사병까지, 수천 명이 1급 비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3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CNN방송에 따르면, 국방 기밀 정보를 허가 없이 반출·소지·전파한 혐의로 이날 체포된 잭 테세이라(21)는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102정보단 소속 일병으로 군사 통신망 관리 임무를 맡아 왔다. 2019년 9월 입대한 뒤 기본 훈련·교육 등을 마치고 2021년 10월 현재 근무 중인 매사추세츠주 공군 방위군에 배치됐다.
계급은 일병에 불과했으나, '비밀 취급 권한'은 매우 컸다. 테세이라는 미 국방부나 여러 정보기관이 수집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관련 기밀, 동맹국 동향 등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1급 비밀을 쉽게 손에 넣었다. 한 미국 관리는 그에 대해 "국방부 보안 인트라넷 '합동세계정보통신체계(JWICS)'를 통해 고도로 기밀화된 군사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WP에 말했다.
물론 국방부는 기밀 접근 권한 부여와 관련, '계급'보다는 '직무' 연관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투 부대의 젊은 소대장 등) 우리는 아주 젊은 이들에게도 높은 수준의 보안 인가 등 많은 책임을 맡긴다"며 "이들 군인을 신뢰하는 게 군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기밀문건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NYT는 "미군 장성과 이들의 부관, 국방부 대령급 장교, 해군 함장, 하급 장교 일부는 물론이고 정보부대 소속 일부 사병들까지, 족히 수천 명이 1급 비밀을 다루는 권한을 갖고 있다. 2급 비밀은 미 국방부나 국가안보기관 직원이라면 사실상 모두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민간군사업체와 싱크탱크 애널리스트들에게도 비밀 취급 인가가 주어진다.
국방부 기밀 취급 시스템의 허술함은 다른 데에서도 확인된다. CNN은 "CIA와 FBI는 직원 채용 시 전원에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재검사를 하지만 국방부에선 필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만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보안의 기본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글렌 거스텔 전 국가안보국(NSC) 법률 고문은 "현재 군 정보 시스템에선 보안 허가를 받으면 누구든 거의 모든 정보기관의 기밀 문건에 접근할 자격을 얻는다"고 말했다.
기밀문건을 인쇄해 배포하는 관행도 문제다. "장군들이 서류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이유라고 하나, 이번에 유출된 문건 대부분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고위 관리를 위해 만든 브리핑 책자의 사본을 사진으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테세이라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CIA 출신으로 국가 기밀을 유출한 에드워드 스노든, 2010년 위키리크스에 군 기밀을 빼돌린 육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 등 '확신범'과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대화방에서 고급 정보 취득 자격을 뽐내고 싶어했던 청년의 '허세'에 가깝다는 얘기다. 테세이라가 기밀문건을 올린 채팅방 멤버이자 그를 직접 만났다는 한 청년은 "테세이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애국심이 강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총기에 관심이 많고, 미국의 미래에 의구심을 가진 자유주의자였다"고 WP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