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직장인 황모(37)씨는 전세금 때문에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내달 중순이 전세 계약 만기지만 여태껏 집을 보러 온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달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받지 못하면 아파트 매매 계약금 3,000만 원을 날리게 된다. 그는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제날 돌려주지 않으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3,000만 원 계약금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하겠다는 내용증명 문서를 보냈다.
"소송을 가면 제가 이기기야 하겠지만 이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게 체결한 매매 계약도 어그러지니 속이 탑니다."
요즘 신규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밑도는 역전세 아파트가 쏟아지면서 황씨처럼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임차인이 수두룩하다. 특히 2년 전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 영향으로 전셋값이 고공행진할 때 전셋값을 지렛대 삼아 갭투자에 나선 이들이 시장 리스크의 핵으로 떠올랐다.
14일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 공개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기(1~3월) 전국 아파트 전세 거래 2만7,952건 중 1만7,016건(60.8%)이 2년 전(2021년 1분기)보다 더 낮은 가격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아파트 전셋값은 2018년부터 2020년 7월까지 큰 변동이 없다가, 임대차 2법이 시행된 2020년 7월 31일 이후 가파르게 뛰어 2021년 속속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부터 전세 시세가 꺾여 올해도 계속 하락세를 유지 중이다. 이 결과 신규 전셋값이 2년 전 시세를 밑도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임대차 2법 시행에 따라 전셋값을 크게 올려 받은 집주인(갭투자자 포함)이 '전셋값 급락 부메랑'을 맞고 있는 셈이다.
역전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로 86%에 이른다. 이어 세종(76%) 인천(70%) 부산(68%) 순이다. 서울(63%)을 포함한 수도권은 64.5%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입주물량이 많아 전세 시세는 올해 내내 하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역전세난이 더 확산될 거란 우려다.
리스크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세입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법원에 신청한 임차권등기 신청 건수는 3,413건에 달했다. 3,000건 돌파는 사상 처음이다. 지역별로 서울(1,075건)이 가장 많았다.
임차권등기가 이뤄지면 해당 주택은 전세금반환소송을 거쳐 경매로 나온다. 현재 경매시장엔 전세사기 타깃이 된 빌라가 대부분(80%)이지만, 하반기부턴 역전세 아파트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는 "이는 세입자에게 상당한 재산상 불이익을 안기는 거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집주인에 대한 전세금반환 대출 요건을 낮추는 등 연착륙 조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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