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첫 통일백서에서 비핵화의 대상을 북한으로 명시했다. 한반도 정세 불안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핵문제의 책임이 북한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주요 성과는 아예 백서에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과의 협력을 강조하기보다는, 갈수록 고도화하는 군사위협에 맞대응하고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온 현 정부의 색깔이 또렷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통일부가 14일 발간한 290쪽 분량의 '2023 통일백서'는 한반도 정세를 "북한은 우리와 미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고수했고 만성적인 경제난 속에서도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을 지속하면서 한반도의 안보불안을 가중시켰다"고 규정했다. 이에 맞서 '단호한 대처'를 강조했다. 북한과의 대화·협력·신뢰를 강조하며 '도발'이란 표현을 자제해온 지난해 통일백서와 대조적이다.
백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1992년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명시된 표현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북한 비핵화로 바꿨다. 비핵화를 촉구할 때면 남한이나 주한미군을 걸고넘어지는 북한의 행태에 단호하게 선을 그은 셈이다. 북한은 2018~2020년 남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 용어를 근거로 주한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서는 그간 사용해온 '북미관계'를 '미북관계'라고 수정했다. 이 용어는 백서에 7번 등장한다.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용어를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고, 이를 반영해 통일된 용어로 일관되게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인 '담대한 구상'을 홍보하면서 자료에 미북관계라고 처음 표기했다. 이에 대해 "이 용어를 공식화한 것은 아니며 미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혼용한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는 아예 북한보다 미국을 먼저 앞세운 것이다.
백서에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과 평양정상회담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7개 장 가운데 2개 장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통일부는 "과거 제기된 대북 저자세 논란, 인권문제 외면 등 미흡했던 부분을 바로잡고 자유·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둔 남북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