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고위 인사들 첫 재판에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위한 서약서 작성 문제로 검찰과 변호인 측이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 허경무 김정곤 김미경)는 14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출석 의무는 없어, 피고인들은 모두 나오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선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위한 서약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재판 전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신청에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회신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이에 "서약서 서명은 법률가의 양심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그는 '기밀 누설 시 반국가적 행위임을 자인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는 서약서 내용을 읽으면서 "보는 순간 손이 덜덜 떨린다"며 "(서약서 제출을 이유로) 열람등사를 제한하는 건 직권남용이자 형사소송법 위배"라고 맞섰다.
검찰은 서약서 작성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수사기록에 국정원 등에서 확보한 기밀이 있다보니 제3자 유출을 막으려는 최소한의 조처라는 것이다. 검찰은 "관련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공무원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고, 제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서약서를 발부해 열람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서도) 서약서를 썼으니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면서도 "변호인 측에서 검찰 측에 한번 더 열람·등사를 신청해보고 재차 거부하면 그때 법원에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명령을 신청하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약서를 작성했다가 어기면 정보보안 관련 법규 등에 따라 제재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실장 등은 탈북어민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의혹을 받던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내도록 관계기관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